근면함은 경솔함과 신중함 사이에 있다.

by 또 다른세상

사람을 얻는 지혜 / 발타자르 그라시안 / 현대지성

2부 면도날처럼 날카롭게

현실을 인식하라


53. 근면함은 경솔함과 신중함 사이에 있다.


근면과 지성. 근면은 지성에 머물러 있는 일을 신속하게 실행하게 하는 힘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서두르기를 잘하는데, 장애물을 발견하지 못해 경솔하게 행동한다. 반면 현명한 사람은 너무 조심해서 실수를 저지른다. 따라서 부지런함은 행운의 어머니이다. 일을 내일로 미루지 않는 사람은 많은 일을 이룬 것이나 마찬가지다. 아우구스투스 활제의 좌우명은 “천천히 서두르라”였다.


물건 하나를 사려고 해도 나는 오래 망설이는 편이다. 꼼꼼하게 비교하고, 한참을 들여다보며, 이게 진짜 필요할까 자문한다. 그런 나를 두고 어떤 이는 신중하다고 말하고, 또 다른 이는 답답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시간을 들였음에도 불구하고 행동으로 옮기지 못할 때가 많다는 것이다. 생각만 하다 보면 때를 놓치고, 기회를 지나치고, 결국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요즘 ‘근면’이라는 단어를 곱씹는다.


근면함은 단순히 부지런히 움직인다는 뜻만은 아니다. 그것은 생각을 실행으로 옮기는 힘이자, 조심스러움과 무모함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주는 미덕이다. 누군가는 너무 신중해서 아무 일도 못 하고, 또 누군가는 너무 성급해서 문제를 일으킨다. 나는 이 둘 사이에서 자주 흔들렸다. 실수할까 두려워 미루기도 하고, 다급한 마음에 준비 없이 덤볐다가 낭패를 보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흘러도 그다지 나아간 느낌이 없었다. 나만 제자리에 있는 것 같고, 나만 느린 것 같았다.


하지만 조금씩 깨닫는다. 중요한 건 완벽한 판단이 아니라, 적절한 시점에 움직이는 용기라는 것을. 근면함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판단이 섰을 때, 머뭇거림 없이 발을 내딛는 태도다. 신중함은 필요하지만, 과도하면 겁이 되고, 그 겁은 정체가 된다. 반대로 경솔함은 속도는 빠르지만 방향을 잃기 쉽다. 근면은 그 둘 사이를 잇는 다리다. 생각한 것을 바로 실행에 옮기는 결단력, 실수하더라도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끈기, 그것이 근면의 힘이다.


돌이켜보면 내 삶에서 가장 의미 있었던 일들은 모두 ‘바로 행동했을 때’ 일어났다. 글을 쓰기로 마음먹고 새벽에 일어나 첫 문장을 적었던 날, 두려움 속에서도 병원 문을 열고 치료를 시작했던 날, 하고 싶은 공부를 망설이다가 결국 신청서를 넣었던 날. 그 모든 순간에 나는 지혜롭지도 않았고, 완전히 준비된 상태도 아니었다. 그저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절박함과, 해보자는 의지가 있었을 뿐이다. 결과는 예상보다 좋기도 했고, 때로는 아프기도 했지만, 확실한 건 그 전과는 다른 내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천천히 서두르라(Festina lente)”고 말했다. 말이 조금은 모순처럼 들리지만, 참으로 절묘한 가르침이다. 무턱대고 달리지 말고, 그러나 걸음을 멈추지도 말라는 뜻이다. 나 또한 이제는 이 말을 삶의 좌우명으로 삼으려 한다. 천천히, 그러나 멈추지 않기. 신중하게 생각하되, 움직일 때는 확실하게. 그리고 무엇보다, 내일로 미루지 말기.


우리는 종종 '더 나은 타이밍'을 기다린다. 건강이 좀 더 나아지면, 마음이 편해지면, 돈이 생기면, 누군가가 응원해주면. 하지만 그런 완벽한 때는 오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이 가장 빠르고도 확실한 시간이다. 근면한 사람은 그것을 알고, 더 좋은 날을 기다리기보다 오늘을 다 써버린다. 그래서 그는 결국 더 많은 것을 얻는다.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이 조금씩 나아지는 건, 바로 그 작은 실천의 힘 때문이다.


근면함은 내가 나를 움직이게 하는 힘이다. 그것은 누구의 격려도, 상황의 변화도 아닌, 내 안에서 솟아나는 작지만 강한 동력이다. 게으름과 두려움을 이겨내고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실패해도 다시 시작하는 것. 그래서 나는 오늘도 생각을 정리하고, 결심을 하고, 작은 일을 실행에 옮긴다. 언젠가 내 삶의 궤적이 크게 휘어질 때, 그 시작점은 바로 오늘의 한 걸음일 것이다.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걷는 지금 이 순간이 결국 나를 만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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