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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사다 준 과자

by 또 다른세상

입맛이 없어진 요즘, 자꾸만 과자 생각이 난다. 밥을 먹고도 입이 궁금하다. TV 속에서 맛있게 음식을 먹는 장면을 보면, 당장이라도 그곳에 가서 똑같이 먹고 싶은 충동이 인다. 예전엔 그저 스쳐 지나가던 화면이었는데, 몸이 아프고 식욕이 사라진 요즘에는 이상하리만치 예민하게 다가온다. 한입 베어 무는 장면, 반짝이는 양념의 윤기, 입안 가득 들어가는 음식. 마치 내가 먹는 듯, 아니 나도 꼭 먹어야 할 것만 같은 마음이 든다.


엄마와 나란히 앉아 그런 화면을 보고 있다가 문득 물었다.

“우리도 저렇게 가서 맛있는 음식 먹을 날이 올까?”

엄마는 별 말 없이 웃는다. 그 웃음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기도 하고, 전혀 모르겠기도 하다.

건강할 땐 왜 그렇게 바쁜 척을 했을까. 왜 그렇게 함께하는 시간을 내지 못했을까. 그렇게 많은 식탁 위에서, 그렇게 많은 길 위에서 엄마와 나는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과자라도 먹자, 싶어서 부엌 찬장을 열어봤다. 감자스낵 종류는 이미 다 먹어치운 뒤였다. 이도 저도 없어서 투덜거리듯 말했다.

“엄마, 딸이 먹을 과자 없어.”

엄마는 나직하게 말한다.

“마트 가서 사다 먹으면 되지.”

“발도 아픈데 어떻게 가...”

괜히 엄살을 부렸다. 엄마는 피식 웃으며 말한다.

“아이고, 내가 너 먹고 싶은 걸 어떻게 알아서 사다주냐?”


그 말이 섭섭하기보다 애틋하게 들렸다. 대화는 거기서 멈췄지만, 내 안엔 끝나지 않은 마음 하나가 떠 있었다. 사실 하고 싶은 건 과자를 먹는 것도, 맛집 음식을 따라하는 것도 아니었다. 하고 싶은 건 엄마랑 어디든 함께 가는 거였다. 아무 것도 아닌 걸 먹더라도, 엄마랑 함께 나란히 앉아 있는 그 시간이 그리웠던 거였다.


다음 날, 산책 나간 요양보호사 선생님에게 전화가 왔다. 두 번이나 왔지만, 먼저 온 전화를 받느라 놓쳤다. 다시 걸었지만 이번엔 선생님이 받지 않았다. 불안한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무슨 일은 아니겠지?’ 몇 번을 되뇌며 두 분이 돌아오길 기다렸다.


괜한 생각을 쫓아내듯 부엌으로 향했다. 어제 TV에서 본 칼국수가 떠올랐다. 멸치 국물을 올려 끓이기 시작했다. 다시마, 멸치, 감자, 호박, 당근, 양파를 넣었다. 칼국수가 없어도 국수면이라도 넣어 먹으면 그럴듯하겠지. 그런 마음으로 냄비를 끓였다.


현관문이 열렸다. 검은 봉지 두 개가 식탁 위에 올려졌다. 반가운 마음보다 먼저 튀어나온 건 궁금함이었다.

“무슨 일로 전화하셨어요?”

요양사 선생님이 웃으며 말했다.

“어르신이 그러시더라구요. 딸이 과자 먹고 싶다 해서, 뭐 사야 할지 물어보려고 전화 드렸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리가 텅 비었다. 농담처럼 한 말이었다. 엄살처럼 한 푸념이었다. 그런데 엄마는 그걸 마음에 담았던 거다. 엄마는 듣고, 기억하고, 마음에 담았다. 몸이 아파 투정부린 딸의 말 한 마디도 그냥 넘기지 않았다.


봉지 속을 들여다보니 복숭아와 콩나물이 들어 있었다. 과자는 아니었다. 어쩐지 더 궁금했다. 왜 사셨는지 여쭤보았다.

“어제 복숭아 먹어봤는데, 참 맛있더라. 콩나물은... 나물해서 먹으라고.”

그 말을 듣는 순간, 울컥했다. 엄마가 딸에게 사다준 ‘과자’는 복숭아와 콩나물이었다. 세상 어떤 군것질보다 건강한 과자, 세상 어떤 디저트보다 따뜻한 마음이었다.


몸이 불편한 엄마가, 요양보호사 선생님에게 딸 과자 사야 한다고 말한 것도 고마웠다. 하지만 정작 내 마음을 찌른 건, 그 검은 봉지 안에 담긴 복숭아와 콩나물 한 봉지였다.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 가장 따뜻한 간식일지도 모른다.

엄마는 늘 그랬다. 내가 원하는 걸 정확히 모르면서도, 뭔가를 해주려 애썼다. 정확히 알아서가 아니라, 정확히 사랑해서였다.


요양보호사 선생님의 손길로 대신 전해진 그 마음이, 너무도 생생하게 내 눈앞에 펼쳐졌다. 봉지 속 과일과 채소는, 밀가루를 튀겨 만든 과자가 아니라 사랑을 가득 담은 진짜 ‘간식’이었다.


냄비에서 김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팔팔 끓는 물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국수를 넣었다. 국물은 진하고 깊었다. 거기엔 다시마와 멸치뿐 아니라 복숭아와 콩나물의 따뜻한 마음도 함께 들어간 듯했다. 이 정도면 당분간, 몸에 나쁜 과자 생각은 안 날 것 같았다. 아니, 그보다 이젠 다른 게 생각나지 않았다. 그 과자보다 더 좋은 건, 엄마와 나란히 앉아 먹는 이 평범한 국수 한 그릇이었다.


엄마는 아파도 엄마다. 내가 힘들다고 말하면, 본인 아픈 건 뒤로 미루고 딸을 걱정한다. 손 하나 까딱 못하는 날에도, 마음만큼은 묵직하고 넉넉하다.


사랑은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복숭아 한 알에, 콩나물 한 줌에 담긴 그런 마음이었다. 그저 나를 위해, ‘딸이 먹고 싶다’는 말 한마디를 기억해주는 마음. 그 마음이 과자가 되었고, 밥이 되었고, 오늘 하루의 힘이 되었다.


오늘의 간식은 복숭아와 콩나물이다. 오늘의 과자는 엄마가 내 마음을 알아주었다는 사실이다. 그 과자 하나면, 아픈 하루에도 웃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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