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라는 존재
군에서 말년휴가 나온 아들에게 집밥을 제대로 해 주지도 못한다. 손이 따가워서 물에 손을 댈 수가 없다. 49일째 항암치료 중이다. 아침에 냉동실에 있던 고등어 한 마리를 꺼냈다. 통째로 구워 먹으려고 그릇에 넣었더니 들어가지 않는다. 다시 꺼내서 머리 부분을 잘랐다. 나누어서 넣으니 통에 들어간다.
온도와 시간을 맞춰놓았다. 밥솥에서 밥이 거의 다 될 때쯤 구어진 고등어를 큰 접시에 담아 식탁에 올려놓았다. 반찬은 없지만 마주 보며 먹을 수 있는 날이 많지 않아서 감사한 시간이다. 아들은 뭔가 이야기를 꺼내고 싶은 모습이다. 눈이 자주 마주친다.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다. “엄마, 제대하고 집을 나가서 해야 하는 공부도 하고, 혼자 지내고 싶은데 그렇게 하면 불효자가 되는 건가요?”라고 묻는다. 무슨 소리인가? 했더니 집에 있으면 집중이 안 된다는 것이다. “아니지, 하고자 하는 것이 있으면 해야지. 불효라고 생각하지 않아.”라고 이야기했다.
내가 아픈 것인데, 아들에게 부담을 주는 것은 싫다. 어차피 내 곁을 떠나서 생활해야 하고 성인이 되었으니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부모가 짐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들은 나름대로 갈 길이 있고, 나도 내 삶이 있으니 각자의 삶을 존중해 주자.” 서로 피해주거나 부담을 주는 것은 나중에 후회할 일이라고 말했다.
말을 하고 나니 조금 얼굴이 편안해진 아들의 얼굴이 보였다.
집안 환경이 아픈 사람뿐이니 본인이 케어할 수도 없다. 군대 가기 전 대학교 한 학기만 했다. 다시 시작하려면 본인도 부담될 수 있다. 부모의 입장은 대학교 입학을 했으니 졸업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어렵다면 미래 자신을 위해 과감한 목표와 노력을 할 수 있는 그 무언가를 찾아가야 한다.
얼마나 두려울까? 자신의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해. 졸업을 해도 취업의 문은 좁아졌다. 앞으로 현재의 직원 90%가 없어진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군 제대한다고 어디 여행 갈 생각도 할 수 있는데 무언가를 해 보겠다고 하니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 같다.
성인 남자인 아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힘찬 응원과 믿어주는 것이다. 내 건강의 문제를 자식에게 부담 주지 않는 것이 내가 할 일이다. 항암을 하기 전에는 부작용이 무서웠다. 건장하게 성장한 아들이 제대한다고 하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혼자 항암을 맞으러 다니고 부작용을 견디고 있는 상황에서, 자녀의 몫이 아니라 아픈 것은 내 몫이라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부모가 자식을 의지한다고 하면 부담스러울 것 같다.
부모가 자식의 인생에 끼어들면 자식의 인생이 아니듯이, 자식도 부모가 아프다고 해서 함께 있어야 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혼자만의 공간을 갖고 싶은 이유도 있을 것이다. 엄마라는 존재는 든든한 버팀목이고, 자녀가 지친 마음을 잠시 쉬어 갈 수 있는 단 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스스로 원하는 만큼 원하는 세상을 살아가길 바랄 뿐이다. 독립적인 생활을 잘할 수 있도록 응원해주겠다. 힘이 들어도 자신이 선택한 길에 책임을 지고, 가끔은 방향을 바꾸더라도 그 길이 맞다고 생각한다.
엄마라는 존재는 아프다고 자식을 의지하려는 마음이 아닌, 극복해 가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록 지금, 걷지 못하는 중증 환자인 친정엄마, 나는 암 선고를 받고 항암 중이다. 하루하루 삶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더 많이 느끼고 있다. 가족의 사랑과 변화하는 자연 속을 잘 살펴보며 행복해하는 중이다.
건강했을 때 보이지 않던 것들이 이제 조금씩 보이고 있다. 사람에게서 오는 감정으로 인해 스스로가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불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긍정적인 부분과 할 수 있는 부분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부모라고 자식에게 어떻게 살아가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철이 들었든, 안 들었든 더 믿고 지속적인 응원이 필요한 시기다. 끝까지 엄마라는 따뜻함을 간직하고 싶은 작은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