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 한잔해야 잠이 오는 이분

엄마라는 존재

by 또 다른세상

친정엄마가 입원한 후, 큰언니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동생들이 사정이 있으면 밤이고 낮이고 엄마를 간호하는 건 당연한 듯한 그녀다. 익숙한 공간이 아닌 병실에서 보내는 밤은 유독 길고 불편할 텐데도, 큰언니의 귀가는 아직 예정이 없다.

가족 중에서 가장 시끄러운 사람이 친정엄마와 큰언니다. 사소한 일로 다투기도 하지만, 누구보다 서로를 아끼고 챙긴다. 엄마가 고구마를 좋아한다며 고구마 굽는 기계를 사 왔지만, 정작 병원에 계시느라 내가 덕분에 잘 구워 먹고 있다.


엄마는 이상하게도 대변을 볼 때 꼭 큰언니만 찾는다. 오빠가 있을 때는 불편하다며, 집에 있는 언니를 당장 오라고 부른다. 새벽이든, 밥을 먹다 말든, 엄마의 부름에 망설임 없이 달려가는 큰언니를 보면서 장녀라는 책임감을 새삼 느낀다.


어제저녁, 큰언니는 소주 한 잔을 따랐다. 병원에서 며칠째 잠을 설쳤다. 몸이 피곤하면 잠이 올 법도 한데, 꼭 술을 한 잔 마셔야 한다. 건강에도 좋지 않은데 왜 이러는 걸까. 교회를 다니면서 저녁마다 술을 마시는 모습이 이해되지 않았다.


소주 한 모금을 삼키더니 너무 쓰다며 맥주를 조금 섞는다. 나는 술을 못 마시니 함께할 수 없어 옆에서 지켜볼 뿐이다. 하품이 나오고, 술자리의 고요함이 낯설다. 큰언니는 두 잔 정도 마시고 조용히 식탁을 치운다.

같은 공간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늘 고맙고, 미안하기만 한 언니에게 나는 너무 소홀했던 건 아닐까. 항암 부작용으로 얼굴과 손이 트고, 피부염까지 생겼다. 6개월간 진행될 선행 항암 치료 중 이제 겨우 3분의 1을 지나왔다.


“그래도 다행이지. 음식까지 못 먹었으면 얼마나 힘들겠어.”

큰언니는 담담하게 말하면서도, 끝내 눈물을 보인다. 나 때문에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언니를 보면 마음이 저릿하다. 내가 병원에 가야 하는 상황이 올까 봐, 본인도 아픈 몸을 이끌고 나를 지켜주는 것이다.

큰언니는 디스크로 인해 병원 진료를 미루고 있다. 진통제로 버티면서도, 내 앞에서는 괜찮은 척한다. 나는 그런 언니를 보며 처음으로 술 한 잔이 간절했다. 언니는 말한다.

“널 생각하면 눈물만 나와. 치료 과정도 힘들고, 관리도 어렵잖아.”


암이라는 단어 자체가 무섭다고 했던 언니. 치료 과정에서 생긴 부작용을 하나하나 받아들이고 있다. 힘들다고 소리 내어 말해 봤자, 주변 사람들만 더 아플 테니까. 나는 언니의 그런 마음이 안쓰러워 가슴이 저릿하다.

그래도 먹고 싶은 건 자주 이야기한다. 큰언니는 손이 빠르고 요리도 참 잘한다. 냉잇국, 닭백숙, 고등어찜, 갈비, 나물, 메추리알볶음, 미역줄기볶음... 말만 하면 금방 차려진다. 냉잇국을 두 끼 먹고 질린다고 하면, 다른 국을 후다닥 끓여준다. 이렇게 호강하는 날이 있었던가 싶다.


잇몸이 부어 아프다. 반갑지 않은 구내염이 생길 징조다. 카레가 먹고 싶어 감자를 다섯 개 사 왔다. 언니가 병원에 가면 내가 직접 만들어 먹으려던 참이었다. 부드러운 음식을 먹으면 조금 나을 것 같았다.

감자 봉지를 본 언니가 묻는다.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카레 좀 먹어볼까 해서 사 왔어.”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언니는 부엌으로 향했다. 몇 분도 지나지 않아 따뜻한 카레가 식탁 위에 놓였다.


“따뜻할 때 조금 먹어봐.”

좀 전에 고구마, 단호박, 계란, 사과를 먹고도, 카레를 한 그릇 더 떠서 먹었다. 배가 불러도 맛있었다. 그동안 음식이 입에 잘 붙지 않았는데, 오랜만에 먹고 싶은 걸 맛있게 먹으니 몸도 마음도 조금은 위로받는 기분이었다.


큰언니는 병간호에 지쳐있을 텐데도, 내 얼굴을 보면 마음이 아파 술을 마셔야 잠이 온다고 했다. 허리를 부여잡고 걸으면서도, 내가 먹고 싶어 하는 걸 정성스럽게 만들어 준다. 그 마음은 무엇일까. 어쩌면 엄마의 빈자리를 또 다른 사랑으로 채워주고 있는 건 아닐까.


깊은 사람은 아픔을 묵묵히 견디고, 힘찬 걸음으로 치유할 것이다. 큰언니도, 나도 그렇게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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