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라는 존재
아이가 놀다가 갑자기 위험 상황에 처했을 때, 엄마가 기적적인 힘을 발휘해 아이를 구하는 영상을 가끔 보았다. 평소 쓰지 않던 힘이 나오는 순간들. 오늘 하루 종일 나도 그런 경험을 했다. 송글송글 맺힌 땀방울을 보며 '참 못 말리는 사람이다'라고 스스로 생각했다.
오늘은 여섯 번째 항암 치료를 받는 날이다. 가족이 함께 가겠다고 했지만, 항암을 6개월 동안 받아야 하는 장기전이라 컨디션이 좋을 때는 혼자 가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3호선 갈아타는 계단에서 갑자기 무릎에 통증이 왔다. 천천히 걷고 있었는데도 순간 어찌할 바를 몰랐다. 멈춰 서서 숨을 고른 뒤, 천천히 움직여 병원까지 조심히 찾아갔다. 근육통은 약 기운이 떨어진 증상 때문이었다.
외래 진료는 항암을 세 번 받은 후에나 가능해서 부작용이 생겨도 참아내야 한다. 오늘도 그랬다. 종양내과에 도착하여 확인을 마친 뒤 치료실로 들어갔다. 여전히 무거운 분위기. 앞자리 보호자는 간호사가 환자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큰 소리로 깨웠다. 간호사는 자주 와서 이름과 생년월일을 확인했지만, 그때마다 옆자리까지 피곤해지는 느낌이었다.
두 시간 동안 항암 주사를 맞고 천천히 집으로 돌아왔다. 먼저 점심을 챙겨 먹었다. 부작용 약도 함께 맞았으니 밥 한 그릇을 비우고 과일까지 챙겨 먹었다.
모르는 전화번호로 연락이 왔다. 환자용 침대가 내일 오전 10시에 배송된다는 안내였다. 공간 확보가 필요하다고 했다. 퇴원 후에는 산소호흡기를 설치해야 하기에 일반 침대를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간병을 맡은 오빠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했다. 오빠는 재활치료실을 방문해야 해서 조금 늦는다고 했다. 휠체어 이동이 필요한데 아직 불안정한 상태라 큰언니 혼자서는 어렵다고 했다. 천천히 오라고 말했다.
엄마 방의 책장을 빼내고, 거실에 있던 책장도 공부방으로 옮겼다. 바닥에 수건을 깔아 책장을 밀어 옮겼더니 생각보다 쉽게 끝났다. 바닥의 먼지를 닦아내고 빈 공간을 만들었다.
이제 문제는 침대였다. 할 수 있을까? 시트를 기울여 보고 살짝 끌어보니 가능할 것 같았다. 힘을 내어 공부방으로 옮겼다. 침대 프레임을 보니 십자드라이버가 있으면 해결될 것 같았다. 공구 상자를 가져와 나사를 풀었다. 세 개 정도 풀자 ‘쿵!’ 하고 긴 나무 프레임이 떨어졌다. 깜짝 놀랐지만,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차근차근 해체한 뒤, 발코니에 하나씩 옮겨 놓았다. ‘침대 해체하는 것, 별거 아니네.’ 남자가 아니면 못할 일이라는 편견이 있었는데, 결국 사람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바닥을 여러 번 닦아도 걸레에는 새까만 먼지가 묻어나왔다. 침대에 있던 시트와 이불도 세탁기에 세 번 나누어 넣고 빨아 건조했다. 그렇게 엄마 방은 텅 비었고, 작은 공부방만 가득 차게 되었다. 책장을 정리하면서 버려야 할 책도 많았지만, 쉽게 손이 가지 않았다. 읽은 책도 못 버리는 미련함이 남아 있었다.
작은 물건들도 정리해 보았다. 아주 조금만 재활용 상자에 넣었다. 항암도 받고, 땀도 흘려서인지 나른해졌다. 바나나를 한 개 먹고, 1.5리터의 물을 마셔야 하기에 보리차를 끓여 두었다.
조금 쉬려고 침대에 누웠다. 그런데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 다시 일어났다. 안방에서 “아니, 아픈 애가 이걸 혼자 다 했어?”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당연하지! 엄마가 생사를 넘나들었는데, 퇴원할 수 있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데. 그 마음으로 정리하는 게 즐거웠어.’
간절함을 담아 이제 더 자주 엄마를 찾아뵙고, 좋은 말만 하고, 행복할 수 있도록 온 가족이 노력하자. 한 번 이런 생지옥을 맛보았으니, 가족의 행복은 결국 엄마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모두 알았을 것이다. 엄마가 원하는 것을 해드리고 싶다. 같이 노력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