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엄마는 새벽 세 시, 모두가 잠든 시간에 두꺼운 돋보기를 쓰고 성경책을 펼치신다. 요즘은 ‘주기도문’에 마음을 두고 계신 듯하다. 읽고, 또 읽고, 반복해서 묵상하신다. 그러다 동화책 필사도 이어가신다. 때로는 큰 소리로 읽으시기도 하지만 단어들이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는다. 내가 “잘 읽으셨어요.”라고 말하면, “말이 안 돼.” 하며 고개를 젓는다. 그럼에도 이른 새벽마다 열심히 글을 읽고 쓰는 엄마의 모습은 늘 경이롭다.
책을 가까이하지 않는 나를 보시면 꼭 한마디 하신다. “오늘은 왜 책 안 읽고 뭐하니?” 어떻게 아셨을까. 내가 무엇을 하는지 늘 살펴주는, 세상에서 유일한 사람이 엄마다. 그 관심이 고맙고, 또 우습고, 결국은 참 따뜻하다.
주말에는 언니네 가족이 가평 여행을 떠나며, 아픈 동생과 엄마를 위해 정성껏 반찬을 해다 주었다. 각종 나물과 소고기무국까지 냉장고가 풍성해졌다. 연휴 내내 나물비빔밥을 해 먹으며 감사히 지냈다. 반찬이 줄어드는 게 아쉬웠지만, 상해서 버리는 것보다는 맛있게 빨리 먹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예전부터 먹을 것에 민감하셨다. 여러 가지 반찬이 있어도 김치국물만으로 끼니를 해결하실 때면 이해하기 어려웠다. 아픈 나를 더 챙겨 먹이려 하셨던 것이다. “엄마, 제발 다양하게 드셔야 해요. 김치만 드시면 안 돼요.”라고 말하면, 엄마는 특유의 논리로 “김치가 영양가 제일 많아.” 하셨다.
아침에도 나는 콩나물, 가지, 고구마줄기, 고추, 호박나물을 듬뿍 넣어 비빔밥을 만들었다. 그런데 엄마는 조금만 드셨다. 이유를 묻자 “일주일 동안 먹어야 되니까 아껴 먹어야지.”라고 하신다. “다 먹으면 또 해 먹으면 되잖아요.”라고 말해도 엄마는 늘 조금씩만 드신다.
나는 웃으며 말씀드렸다. “새벽부터 주기도문을 읽으신 분이 왜 그러세요? 그런 걱정은 하지 마세요.” 그러자 엄마는 큰 소리로 웃으셨고, 나도 덩달아 웃었다.
월요일, 요양사가 출근하는 날. 아침을 먹으며 나는 엄마께 물었다. “오늘 요양사님이랑 같이 비빔밥 해 먹으면 더 맛있을 것 같지요?” 잠시 침묵하시던 엄마가 이내 말씀하셨다. “그렇게 먹으면 요양사도 좋아하지.” 걱정이 사라진 걸까? 그 귀여운 대답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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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간 휴가를 다녀온 요양사가 들어서자, 엄마는 삼일이 삼 년처럼 길었다며 “보고 싶었다.”고 자연스레 말씀하신다. 무뚝뚝하기만 하던 엄마의 옛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엄마는 여행 이야기를 해 달라고 조르셨고, 요양사님은 딸 가족과 함께한 맛집 투어와 서울 나들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듣는 이도, 들려주는 이도 행복한 얼굴이었다.
점심때가 되어 다시 여러 나물을 꺼내 밥 위에 올리고 고추장을 듬뿍 넣어 싹싹 비벼 드셨다. 맛있게 드시는 두 분을 보니, 그 모습만으로도 마음이 참 든든했다. 엄마들은 자식들의 작은 관심에도 쉽게 감동하신다. 나 역시 건강을 회복해 엄마와 함께 맛집을 찾아가고, 가까운 곳이라도 여행을 다녀오고 싶다. 엄마의 시간이 부디 멈추어 주기를, 오래도록 곁에 계셔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