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단단하게 만드는
작은 훈련

by 또 다른세상

사람을 얻는 지혜 / 발타자르 그라시안 / 현대지성

3부 인생은 짧지만 잘살아낸 삶의 기억은 영원하다.


안목

92. 높이 날수록 넒은 시야가 필요하다.

탁월한 분별력. 이것은 모든 면에서 필요하다. 그리고 말과 행동을 할 때 첫 번째로 중요한 법칙인데, 높은 직책을 맡을수록 더욱 중요하다. 약간의 분별력이, 넘치는 명민함보다 낫다. 탁월한 분별력이 있으면 많은 박수갈채는 받지 못하더라도 안전하게 걸어갈 수는 있다.


오늘도 병원을 향한 긴 여정이 이어졌다. 버스를 타고, 5호선·2호선·3호선을 갈아탄 뒤 셔틀버스를 이용해야 겨우 도착할 수 있는 길. 지하철 안에서 읽지 못한 책을 집중해 읽다 보니 잠시 어지럽기까지 했다. 오전 10시에 출발해 11시 40분쯤 예약된 곳에 도착했지만, 실제 예약 시간은 오후 2시 30분이었다. 병원에서 온 문자가 ‘오후 1시까지 도착하면 일찍 진료 가능’이라 적혀 있어 서둘러 왔지만, 접수 과정은 예상보다 훨씬 복잡했다.

안내 데스크에서는 키오스크로 접수하라고 했고, 키오스크에서는 다시 접수처로 문의하라고 했다. 병원 문자를 보여 주자 “조금 기다렸다가 해당 교수님 안내데스크에서 문의하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러나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결국 일찍 도착했음에도 기존 일정대로 진료를 봐야 했고, 집에 돌아온 시간은 오후 5시였다. 하루가 거의 다 지나가 버렸다.

대중교통을 이용한 이유는 내 일을 스스로 책임지고 싶어서였다. 그동안 병원 동행을 도와준 가족에게 부담을 주고 있다는 생각이 점점 커졌다. 그는 나의 가족이지만 동시에 또 다른 가정의 가장이다. 편안하게 운전해 주는 사람이 있어 심리적으로 안정은 되었지만, 그 때문에 생기는 또 다른 문제들도 있었다. 오랜 시간 불규칙한 병원 일정에 맞춰야 하는 상황에서 ‘갚을 수 없는 도움’은 오히려 더 신경 쓰이는 일이 되었다.


언제 치료가 끝날지 모른다. 그래서 정신을 바짝 차리고, 대중교통을 이용해 혼자 다니려는 마음이 점점 강해졌다. 그동안 받은 도움에 감사하지만, 이제는 진료를 위한 시간을 스스로 견뎌 보려 한다. 조금씩, 그러나 꾸준히 걸어나가 보리라. 이 과정이 결국 내 삶을 다시 내 손에 돌려주는 작은 훈련일지도 모른다.

높은 자리에 있을수록, 혹은 더 힘든 상황에 있을수록 시야를 넓히는 연습이 필요하다. 치료라는 긴 싸움 속에서도 내 삶의 균형을 지키는 분별력이 필요하다. 가족에게 기대는 것과 내 삶을 스스로 감당하는 것 사이에서 중심을 찾는 일이 중요하다. 그렇게 오늘 하루, 병원을 오가는 길에서조차 나는 내 마음을 다잡는다.


언젠가 이 긴 여정이 끝나면, 오늘의 이 경험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음을 알게 되리라 믿는다. 아직은 낯설고 불편하지만, 혼자서 견디는 연습을 하며 조금씩 내 삶의 주체가 되어 간다. 그렇게 한 걸음, 또 한 걸음 내딛으며 나는 지금의 나를 지켜 나간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불안함이 느껴지지 않을 때까지 준비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