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얻는 지혜 / 발타자르 그라시안 / 현대지성
3부 인생은 짧지만 잘살아낸 삶의 기억은 영원하다.
안목
93. 모든 좋은 것에서 유익을 얻는 기술을 익혀라.
만능 재주꾼. 모든 면에서 완벽한 사람은 여러 사람의 가치와 맞먹는다. 그런 사람의 삶은 아주 행복하고, 친구들에게도 그 기쁨이 전해진다. 인간은 기술을 통해 취향을 단련하고 지성을 훈련함으로써 자기 안에 진정한 소우주를 창조해야 한다.
하지만 나의 소우주는 아직 미완성이다.
마트에서도, 은행에서도, 병원에서도, 심지어 친정엄마에게서도 나보다 더 지혜로운 모습을 발견한다. 요즘은 병원에 출근하듯 진료를 다니는데, 셔틀버스 기사님의 세심한 배려를 볼 때마다 감탄한다. 젊은 승객들에게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을 위해 자리를 양보해 달라고 정중히 부탁하는 모습이 참 아름답다.
병원 안으로 들어서면 더 똑똑한 사람들이 수없이 많다. 정문을 들어설 때마다 스스로 ‘난 바보야’라는 생각을 한다. 출력물과 안내문이 휴대폰에도 떠 있지만, 나는 여전히 질문을 반복한다. 오늘은 방사선치료 전 모의치료를 받는 날. 예약 시간보다 일찍 도착해도 어디서 도착 확인을 해야 할지 몰라 두리번거린다.
직원 네 명이 앉아 업무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고, 그들이 대화를 마치길 기다렸다가 조심스레 물었다.
“선생님, 방사선 모의치료 도착 확인은 어디서 하나요?”
“바로 앞에서 하시면 돼요.”
이제는 어디서 대기해야 할지 모르겠다. 다시 눈치를 살피다 또 물었다.
“그럼 어디로 가면 될까요?”
“아무 데나 편안하게 기다리시면 돼요.”
안쪽으로 들어가니 치료실마다 번호가 붙어 있고, 환자 명단 리스트도 보였다. 내 이름이 없었다. ‘아직 시간이 안 됐나 보다’ 생각했지만, 예약 시간이 더 늦은 환자의 이름이 올라오는 걸 보고 다시 혼란스러워졌다. 다른 방으로 옮겨 보아도 내 이름은 없었다. 결국 접수창구로 가서 또 물었다.
“선생님, 혹시 모의치료 장소가 어디인가요?”
“모의치료라고 쓰여 있는 그쪽에서 편안히 기다리시면 곧 호명합니다.”
속으로 생각했다.
‘저 환자, 어리버리하네. 몇 번을 물어보는 거야.’
욕을 먹어도 괜찮다. 그동안 종양내과만 6개월 다닌 ‘후유증’일 수도 있다. 이제는 방사선과 풍경에 익숙한 눈을 길러야 한다. 요즘 글씨도 잘 들어오지 않지만, 서서히 익숙해질 때까지는 물어보고 또 물어볼테다.
나보다 다 완벽해 보이는 그들에게도, 사실은 물어봐 줄 누군가가 필요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