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동행, 큰 삶의 가르침

by 또 다른세상

사람을 얻는 지혜 / 발타자르 그라시안 / 현대지성

3부 인생은 짧지만 잘살아낸 삶의 기억은 영원하다.


안목

95. 힘과 지식을 다 풀지 말고 상대방이 더 큰 것을 기대하게 하라.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라. 늘 당신을 기대하게 해야 한다. 더 많은 것을 약속하고 더 나은 행동을 해서 더 큰 것을 기대하게 해야 한다. 그리고 패를 던질 때도 처음부터 다 던질 필요는 없다. 최고의 계책은 힘과 지식을 절제할 줄 알고,성공을 위해 조금씩 나아가는데 있다.

토요일 저녁이면 늘 통화하는 분이 있다.

“여보세요? 내일 교회 가실 거예요?”

“그럼, 가야지. 9시 30분에 ㅇㅇ은행 앞에서 만나.”

짧은 통화 후 나는 천천히 준비해 길을 나선다. 예전에는 성경책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을 자주 보았지만, 요즘은 영상으로 예배를 드릴 수 있어 나처럼 한쪽 팔을 쓰기 힘든 사람에게도 큰 위로가 된다.

약속 장소에서 나를 향해 서 있는 그분은 내 걸음걸이를 살핀다. “천천히 오라”는 손짓을 하신다. 오십 미터, 이십 미터, 십 미터… 마음은 급하지만 몸은 마음만큼 따라주지 않는다. 가까워지면 웃으며 인사하고 손을 잡는다. 익숙한 동네 공기를 마시며 그분이 안내하는 길을 걷는다. 교회로 가는 길은 아름답다.


버스만 다니는 길밖에 몰랐던 나에게 새로운 길을 알려주신다. 길가의 접시꽃이 환하게 인사한다.

“꽃 참 예쁘게 폈지?”

“접시꽃 맞나요?”

연노란 꽃잎이 하늘을 향해 활짝 기지개를 켠다.


골목을 지날 때마다 새로운 풍경이 펼쳐진다. 처음엔 연꽃인 줄 알았던 큰 잎은 사실 토란이었다. 그분은 “토란이 무성하게 잘 자라네” 하시며 미소를 짓는다. 조금 더 가면 감나무가 노란 열매로 가을을 알린다. 짧은 시간이지만 계절과 풍경을 느끼며 교회에 도착한다.


교회 문 앞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안부를 묻는다. 나는 마스크를 깜빡 잊었지만, 그분의 손을 꼭 잡고 안으로 들어간다. 일찍 온 어르신들과는 가벼운 눈인사만 나누고, 찬양이 울려 퍼지는 예배당에 앉는다. 등뒤와 옆에서 들려오는 이야기 소리 속엔 누가 죽었네, 누구 집사님이 어땠네 하는 부정적인 말도 섞여 있다. 그분은 그런 대화에 끼지 않는다.


2부 예배가 끝나고 밖으로 나오자, 깔끔하게 차려입은 목사님과 관계자들이 인사하며 배웅한다. 우리는 사람들에 밀려 멀리서만 바라본다.


“오늘 어땠어?”

“아픈 저를 위한 설교 같았어요.”

웃으며 대답하자 그분도 고개를 끄덕인다.


토요일엔 무엇을 하셨냐고 물으면 “남편이랑 걸었지” 하신다. 많게는 삼만 보, 적어도 이만 보를 걷는다 한다. 매일 친정어머니를 돌보면서도 불평 한마디 없다. 휠체어를 밀어야 하는 상황에, 친정어머니의 몸무게를 감당하는 건 지금의 그분뿐이다. 스스로 건강을 관리하며 묵묵히 일을 해내는 모습이 존경스럽다.


그래서 나는 그분에게서 늘 기대감을 배운다. 건강을 지키고, 자연에 감사하고, 이웃에게 힘이 되고, 기도하는 삶. 그분이 내게 보여주는 삶의 자세가 바로 내가 배워야 할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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