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얻는 지혜 / 발타자르 그라시안 / 현대지성
3부 인생은 짧지만 잘살아낸 삶의 기억은 영원하다.
안목
100. 인생의 진정한 지식에 이른 자는 속임수를 쉽게 분별한다.
속임수를 분별하는 사람. 현명한 기독교인과 궁정 철학자가 이에 해당한다. 단, 그런 사람이라고 스스로 드러내거나 그런 척해서는 안 된다. 속임수를 분별하는 일은 언제나 지혜의 양식이자, 올곧은 사람의 즐거움이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린다’는 말이 있다. 타인의 허물을 들추기 전에 내 손바닥부터 들여다보라는 뜻일 것이다. 내 손바닥은 지금 무엇을 쥐고 있는가. 그것은 삶의 진실일까, 아니면 나 스스로 만든 핑계일까. 남의 부족함을 말하기 전에 내 삶의 구멍부터 살펴야 한다는 말이 요즘 들어 더욱 마음에 남는다.
지난 몇 달은 나를 성찰하게 만든 시간이었다. 항암 치료로 고통이 심할 때는 ‘이 통증만 줄어든다면, 책을 더 읽을 수 있을 텐데’ 하고 생각했다. 또 ‘회사에 다니지 않고 휴가가 길게 주어진다면, 사색하며 글을 자주 쓸 수 있을 텐데’라는 상상도 했다. 하지만 정작 통증이 조금 완화되고, 치료가 멈춘 지금, 그토록 바라던 여유가 생겼는데도 마음먹은 대로 살고 있지 않다. 몸은 조금 더 자유로워졌는데, 정신은 여전히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다. 두 달 전의 고통을 핑계 삼아 미뤄두었던 일들이 여전히 미뤄진 채로 남아 있다.
항암을 받지 않은 지 두 달이 되었지만 부작용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는 일은 분명 많아졌다. 그런데도 나는 책을 읽지 않고, 글도 충분히 쓰지 않는다. 무엇인가 하고 있기는 하지만, 돌아보면 그것이 내 마음을 채워주지 못한다. 시간이 많아진 지금조차 계획대로 살아가고 있다는 착각 속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올해도 어느덧 세 달밖에 남지 않았다. 한 해를 돌아보면, 하고자 했던 많은 일들이 ‘아프기 때문’이라는 핑계 속에 미뤄졌다. 물론 그것은 엄연한 현실이고, 회피할 수 없는 이유였다. 하지만 동시에 스스로에게 너무 많은 면죄부를 준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 머릿속에서는 여전히 ‘하고 있다’고 자신을 합리화하지만, 내 마음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 괴리감이 나를 지치게 한다.
지금 이 시점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내려놓음이다. 모든 일을 다 할 수 있다는 착각을 버리고, 오히려 할 수 없는 일들을 분명히 선을 그어 포기해야 한다. 그래야 진짜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남은 세 달 동안은 포기할 것은 확실히 포기하고, 가져가야 할 것들을 정성껏 챙기며 살아야겠다.
스스로를 속이지 말자는 다짐이 다시 한 번 마음 깊이 새겨진다. 인생의 진정한 지식은 남을 향한 분별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속이지 않는 데서 비롯된다. 나는 계획대로 살고 있다는 착각 속에서 스스로를 속이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할 수 있는 것만 하면서도 그것에 집중하고 싶다. 모든 것을 갖추지 않아도 된다. 모든 일을 다 이루지 않아도 된다. 중요한 것은 내 안의 진실이다.
아프다는 이유로 미뤄둔 일들, 건강을 핑계로 손 놓아버린 것들, 마음속으로는 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실은 외면하고 있던 일들. 그것들을 하나씩 들여다보며 진짜 나의 몫을 찾고 싶다. 더 이상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듯 자기 기만 속에 살지 않겠다.
2025년의 남은 시간은 길지 않다. 하지만 길지 않기에 오히려 더 단단한 시간이 될 수 있다. 앞으로의 삶 전체를 바꾸기에는 짧지만, 지금의 내 마음을 다잡고 정직하게 살아가기에는 충분하다. 이제는 욕심을 줄이고, 작은 일에도 정성을 기울이며, 무엇보다 나 자신을 속이지 않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속임수를 분별하는 즐거움은 결국 자기 자신을 향한다. 남을 꿰뚫어 보는 눈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 마음의 거짓을 꿰뚫어 보는 눈이다. 나는 나 자신에게 솔직할 수 있는가, 나는 내 핑계를 직시할 수 있는가, 나는 스스로를 속이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가. 그 물음 앞에서 겸허히 고개를 숙인다.
더 이상 모든 것을 계획대로 하고 있다는 착각 속에서 살기를 멈추어야 한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만 할 것이다. 그것이 비록 작고 보잘것없어 보여도 괜찮다. 그것이야말로 나를 속이지 않는 정직한 삶이고, 인생의 진정한 지식에 다가서는 길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