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모습과 진짜 배움 사이

by 또 다른세상

사람을 얻는 지혜 / 발타자르 그라시안 / 현대지성

3부 인생은 짧지만 잘살아낸 삶의 기억은 영원하다.


안목

99. 겉모습이 별로면, 실제로 의도가 좋아도 부족해 보인다

실제와 겉모습. 사물은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보이는 대로 받아들여진다. 그 안을 들여다보는 사람은 드물고, 많은 사람이 겉모습에 열중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겉모습이 별로면, 실제로 아무리 의도가 좋아도 부족할 수밖에 없다.

같이 공부하는 동기 중에 유독 눈에 띄는 학생이 있었다. 남학생인데, 동기들 가운데 가장 젊은 축에 속했고 키도 크고 외모도 단정했다. 학부 전공이 건축이라고 들었는데, 사회복지로 진로를 확장하며 공부하는 듯했다. 무엇보다 성적이 늘 상위권이어서 교수님들의 칭찬이 끊이지 않았다. 수업 시간에 발표할 때도 논리 정연했고, 과제 제출도 빠르고 정확했다. 겉모습과 성적이라는 두 가지 무기를 갖춘 덕에 그는 누구보다 돋보였다.


문제는 조별과제에서 시작되었다. 사회복지 실습 후 작성하는 일지를 다섯 명씩 한 조로 모여 정리해야 했는데, 이 학생에게는 익숙한 일이었지만 나머지 네 명에게는 벅찼다. 교수님은 당연히 그가 조원들을 도와 함께 무리 없이 과제를 완성하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상황은 순조롭지 않았다.


함께 공부하는 동기들의 다수가 50대 이상이었고, 컴퓨터 작업에 익숙하지 않았다. 나 역시 그 과정에서 한계를 절감했다. 파일을 정리하거나 표를 작성하는 기본적인 과정조차 쉽지 않았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었는데, 대부분은 성적우수자에게 질문이 집중되었다. 그는 단체 카카오톡 방에서 방법을 알려주곤 했지만, 정작 글을 읽고도 이해하지 못하는 동기들이 많았다.


문제의 핵심은 언어였다. 컴퓨터 세대인 그는 자신의 언어로 설명했지만, 그 언어가 우리에게는 너무 낯설었다. '간단하다'는 말과 함께 건네는 설명조차 우리에게는 복잡하고 난해했다. 마치 사회복지 실습에서 전문용어만 남발하는 것과 같았다. 게다가 작업 방식이 수시로 바뀌니 의견이 일치하지 않았고, 서로 간의 감정만 쌓여갔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억울한데, 일부러 어렵게 설명한다는 오해까지 생겨났다.


이 과정에서 나는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교수님들은 여전히 그 학생을 칭찬했다. 성실하고 유능한 학생이라는 평가였다. 하지만 동료 학생들의 마음은 달랐다. 조별 과제를 함께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그 이유는 단순했다. 전문적인 지식이나 뛰어난 능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눈높이에 맞춰주는 소통’이었기 때문이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어려운 개념이나 전문용어가 아니라, 쉽게 풀어낸 설명을 원한다. 사회복지는 더더욱 그렇다. 사회적 약자, 소외계층과 함께하는 분야인 만큼, 아무리 좋은 의도와 지식을 가지고 있어도 상대가 이해하지 못하면 소용없다. 겉으로는 훌륭한 성적과 외모로 빛나더라도, 실제로는 동료의 공감을 얻지 못하는 경우를 보며 나는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다.


혹시 나 역시 그런 모습은 아닐까? 사회복지를 공부한다는 이유로 현학적인 말을 하거나, 상대가 이해하지 못하는 언어를 사용하지는 않았을까? 그럴 경우, 아무리 오랫동안 공부한다 해도 그것은 결국 ‘나 자신만을 위한 사회복지’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복지는 지식의 뽐냄이 아니라 공감과 배려의 실천에서 시작된다는 점을 절실히 깨달았다.


겉모습과 실제는 늘 간극을 갖는다. 우리는 보이는 대로 평가받고, 그 평가가 실제보다 크게 왜곡되기도 한다. 하지만 사회복지를 배우는 사람이라면 그 간극을 줄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아무리 겉모습이 빛나도, 진정한 가치는 결국 타인과 통하는 언어,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태도에서 드러난다.


이번 경험은 나에게 귀한 배움이 되었다. 사회복지를 공부하는 목적이 단순히 성적을 잘 받거나 교수님의 칭찬을 듣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 옆의 동료와, 앞으로 내가 만나게 될 수많은 사람들과 한국말로조차 제대로 통하지 않는다면 그 배움은 공허하다. 사람들의 마음에 닿지 않는 사회복지는 결국 자기만족에 머문다.


따라서 나는 결심했다. 앞으로는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을 풀어서 설명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전문 용어 대신 일상 언어를 사용하고, 나에게는 단순한 일이 누군가에게는 얼마나 어려운 일일 수 있는지를 잊지 않으려 한다. 그 태도가야말로 겉모습에 가려지지 않는 ‘진짜 사회복지’를 만드는 길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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