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와 진심 사이

by 또 다른세상

사람을 얻는 지혜 / 발타자르 그라시안 / 현대지성

3부 인생은 짧지만 잘살아낸 삶의 기억은 영원하다.


안목

98. 가장 실질적인 지식은 지짜 의도를 감출 수 아는 것이다.

진자 의도를 감추라. 정념은 정신의 벽에 난 구멍들이다. 가장 실질적인 지식은 진짜 의도를 감출 줄 아는 것이다. 카드놀이에서 패를 보여주는 사람은 패할 위험이 있다. 신중한 사람은 그 자제력으로 노련한 사람이 호기심과 싸운다.


10월부터 나는 매일 방사선치료를 받으러 병원에 가야 한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이라 조금은 걱정이 된다. 한 달 내내 병원으로 출근하듯 다니면 치료가 끝난다. 금·토·일에는 학교에서 사회복지학을 공부한다. 아프다고 집에만 있기보다 동기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지내는 것이 오히려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된다.


중간고사가 10월 중순 이후에 있고, 과제도 미리 하지 않으면 다급해질 수 있다. 나는 친한 언니에게 과제 제출 범위를 물어본다. 요즘은 들어도 그때뿐이라 기억이 잘 나지 않아, 묻고 또 묻는다. 교실에서나 등하교길에 도움을 주려 애쓰는 언니라 늘 고맙다. 하지만 이번엔 카카오톡으로 물었는데 세 시간이 지나도 답이 없다.


드디어 답장이 왔다. 교재 4장, 6장이라고 했다. 분명히 7장을 기억하고 있었기에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친구에게 물어보니 7장, 8장이라고 한다. 내 사정을 잘 아는 언니라 정확히 알려 줄 줄 알았다. 잠시 후 단체 카톡을 보니 역시 7장, 8장이 맞았다. 함께 공유사항을 봤을 텐데 잘못 알려주었다는 말도 없다. 그때 문득 ‘이상한 언니’라는 생각이 스쳤다.


범위도 많고, 읽어야 할 문장은 어렵다. 잘못된 범위로 시작했으면 공부는 되었겠지만 화가 났을 것이다. 그래도 요즘은 컨디션이 돌아오고 있어 과제물에 욕심을 내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그 언니를 ‘친한 언니’로 생각하고 싶다. 분명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긍정적인 면도 많았으니 이런 일 하나로 사람의 전부를 판단하지 않을 것이다. 어떤 의도로 그렇게 알려주었든, 결국 정확한 범위를 알게 되었으니 그것으로 충분하다. 나는 그 언니가 더 아름답게 중년을 보냈으면 한다.


사회복지사 공부를 하면서 다양한 사람을 본다. 성향이 맞지 않아 보는 것만으로도 힘든 사람도 많다. 욕심을 얼굴 가득 담고 손해 보지 않으려 자신을 감추며 이중, 삼중의 얼굴로 살아가는 사람들. 그것이 우리가 사는 인간의 모습일지 모른다. 실질적인 지식은 자신의 소망을 감추는 데 있다. 하지만 그 감춤이 진심과 무관하지 않기를, 의미 있는 의도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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