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도 없으면서, 라는 말 앞에서

by 또 다른세상

사람을 얻는 지혜 / 발타자르 그라시안 / 현대지성

3부 인생은 짧지만 잘살아낸 삶의 기억은 영원하다.


안목

103. 당신의 위치에 걸맞는 위엄을 갖추라

각자 영역에서 위엄을 지니라. 당신이 비록 왕이 아닐지라도 각자 영역에서 행동할 때 왕 같은 위엄을 지니도록 해야 한다. 지혜롭고 고려한 기준 안에서 왕처럼 처신해야 한다.

얼마 전 강의 시간에 예상치 못한 일이 있었다. 강사가 한 학생에게 무심히 “남편도 없으면서”라는 말을 던졌다. 그 순간 강의실 안은 얼어붙은 듯 조용해졌다. 그 학생은 내 가까운 친구였다. 늘 강의시간전 강사님을 위해 목이 마를까 따뜻한 차를 챙겨둔다. 그날은 컵 밑에 휴지를 두면 좋겠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강사는 학생들 앞에서 그 말이 툭! 튀어 나왔다. 강사의 말 한마디에 난처함과 상처가 동시에 묻어나는 표정으로 자리에 앉아 있었다.


강의가 끝난 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친구가 조용히 말했다. “이혼한 걸 아는 건 문제가 아니야. 그저 학생들을 이끌어가는 역할을 맡은 내가 혹여 신뢰를 잃게 되지 않을까 그게 걱정일 뿐이야.” 순간 마음이 뭉클해졌다. 상처를 삼켜내며 더 큰 마음으로 상황을 바라보는 그의 모습에서 큰 그릇의 품격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이혼이라는 단어가 누군가의 삶에서 얼마나 예민한 상처가 될 수 있는지는 분명했다.


학생들은 책에서만 배우지 않는다. 강사의 지식도 배우지만, 그들의 태도와 말 한마디에도 영향을 받는다. 누군가를 친근하게 대하고자 던진 표현 하나가 때론 가르침이 되기도 하고, 상처가 되기도 한다. 친근함이 진심을 대신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그날 다시 깨달았다.

나는 최근 공저 <인사이동>을 출간했다. 방사선치료 때문에 저자 홍보 활동에는 참여하지 못했지만, 카카오톡 프로필에 책 표지를 올려 작은 알림을 대신했다. 그러자 친구가 곧바로 학생 단체방에 소식을 전했고, 몇몇 학생들이 책을 구입하기 시작했다. 그 상황이 고맙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단체방에 “제발 구입하지 마세요.”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하지만 학생들의 마음은 달랐다. 강의실로 오는 길에 근처 서점에서 세 권을 사온 학생도 있었고, 나를 ‘작가님’이라 부르며 사인을 청하는 이도 있었다. 강사조차도 어딘가에서 책을 받아들고는 “이 책은 우리 학생이 쓴 작품이다”라며 소개했다. 그 순간 느낀 마음은 고마움과 부담스러움이 동시에 뒤섞인 것이었다. 책 속에는 내 가장 솔직한 마음이 담겨 있었기에, 누군가의 호칭과 시선이 낯설게 다가오기도 했다.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 준 그 마음은 분명 감사한 것이었다. 그러나 친근함이라는 이름으로 가볍게 던져진 말이 누군가의 마음을 아프게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나는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누구나 실수할 수 있지만, 말은 한 번 내뱉고 나면 되돌릴 수 없다. 그렇기에 말하기 전, 잠시 멈추어 생각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사람은 자기 위치에 걸맞은 위엄을 지녀야 한다. 그것은 권위를 세우려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친근함이라는 이유로 무심코 내뱉은 말이 상처가 되지 않도록, 나 또한 신중하게 입을 열어야겠다. 위엄이란 결국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태도 속에서 빛난다. 그날의 경험이 가르쳐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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