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얻는 지혜 / 발타자르 그라시안 / 현대지성
3부 인생은 짧지만 잘살아낸 삶의 기억은 영원하다.
안목
104. 사람을 다스리는 일이 가장 힘들다
일들의 맥을 짚어보라. 일에 따라 필요한 것들이 다르다. 그런 맥을 짚으려면 숙달된 지식이 필요한데, 여기에는 주의력이 요구된다. 가장 좋은 일은 중요하면서도 다양해서 지루하지 않은 일이다. 다른 사람에게 최소한만 종속되거나, 종속과는 거리가 먼 일이다. 반면, 최악은 인간의 집에서 땀을 흘리고, 신의 집에서는 더 땀을 흘려야 하는 일이다.
살아오면서 수많은 관계 속에서 갈등을 겪었다. 가족과의 갈등, 친구와의 오해, 직장에서의 불편한 공기. 때로는 내 탓이었고, 때로는 상대의 사정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돌아보면, 결국 모든 관계의 근원은 내 안의 마음에서 시작되었다. 내가 상대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모습이 달라졌다. 미운 마음으로 보면 모든 행동이 불편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보면 같은 행동도 다정하게 느껴졌다. 관계의 어려움은 결국 내 마음의 그림자였다. 그래서 요즘은 상대를 탓하기보다 나 자신을 들여다보려 한다. 무너진 마음도, 서툰 표현도, 결국은 나에게서 비롯된 것이니까.
글쓰기를 시작한 지도 벌써 4년이 되었다. 처음엔 단지 생각을 정리하고 싶어 썼던 글이, 어느새 나를 표현하는 또 하나의 삶의 방식이 되었다. 지금까지 7권의 공저에 참여했고, 매번 다른 작가들과 함께 써 내려가는 과정에서 새로운 배움을 얻었다. 공저의 매력은 함께 성장한다는 데 있다. 각자 다른 삶의 결을 가진 사람들이 한 권의 책 안에서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고, 위로를 주고받는다. 어떤 이는 나보다 더 큰 고통을 겪고 있었지만, 누구보다 단단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들을 보며 ‘나도 아직 괜찮다’는 용기를 얻는다. 그래서 나는 계속 공저에 참여한다. 그것은 단순한 출판이 아니라, 사람 사이의 마음을 잇는 일이다.
최근에는 일곱 번째 공저인 『인사이동』이 세상에 나왔다. 책이 출간되자마자 학교 교수님과 동료 학생들이 먼저 구매를 약속했다. 그 마음이 참 고마웠다. 단 한 권이라도 관심을 가져주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지 안다. 교수님은 내 투병 생활을 알고 계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부와 글쓰기를 병행하며 이렇게 책을 출간한 나를 응원해 주셨다. 수업 시간마다 “사회복지는 내 가정에서 먼저 실천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말이 내 마음에 오래 남았다. 내 안의 복지, 내 가족의 복지, 그리고 내 곁 사람들의 복지. 그것이 결국 사회 전체로 확장되는 것이다. 교수님의 그 말은 단순한 지침이 아니라 삶의 철학으로 자리 잡았다.
책이 출간된 후, 교수님께서 『인사이동』을 손에 들고 직접 홍보해 주셨다. 그 모습이 너무 따뜻해서, 순간 눈물이 날 뻔했다. “여기 앉아 있는 학생들이 더 멋지고 훌륭한 사람들입니다.” 교수님께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고개가 숙여졌다. 박수를 받는 그 순간에도 마음 한편이 뜨거워졌다. 감사함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 그저 미소만 지었다. 어쩌면 말보다 진심이 담긴 침묵이 더 깊이 전해질 때가 있다.
이제 나는 학교에 갈 때마다 마음속으로 다짐한다. ‘누구를 만나든 먼저 웃으며 인사하자.’
그동안은 먼저 인사를 건네는 일이 어색했다. 상대가 나를 알아볼까, 인사를 받아줄까, 그런 생각에 머뭇거렸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인사는 마음의 문을 여는 첫 번째 열쇠라는 것을. 작은 인사가 큰 온기를 만든다. 투병 중이라도 웃음을 잃지 말자. 아픔은 내 몫이지만, 미소는 나와 타인을 함께 밝히는 힘이다.
머리가 빠져 거울 속의 내 모습이 낯설 때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 모습 그대로 나다. 민머리라도 그 안의 나는 여전히 글을 쓰고,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병이 내 삶을 바꿔놓았지만, 그 변화 덕분에 더 깊은 마음을 보게 되었다. 투병은 고통만이 아니라, 성찰의 시간이었다. 버티고, 울고, 다시 일어서는 그 모든 순간이 글이 되었고, 그 글은 또 다른 나를 만들었다.
이제는 글을 통해 세상과 나누고 싶다. 단단함보다는 따뜻함으로, 화려함보다는 진심으로. 글 속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 삶이 아무리 버거워도, 마음을 나눌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다시 일어설 수 있다. 그것이 내가 글을 쓰는 이유다.
사람을 다스리는 일, 그것은 결국 나 자신을 다스리는 일이다. 누군가를 이해하려면 먼저 내 마음의 방향을 바로잡아야 한다. 관계의 균형은 타인을 바꾸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나의 시선을 바꾸는 데서 시작된다. 사람을 다루는 일이 어렵다는 말은, 곧 나를 다루는 일이 어렵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어려움을 통해 배우고, 성장하고, 다시 사랑할 수 있다면 그 또한 감사한 일이다.
내 앞에 있는 모든 사람을, 있는 그대로 존경하자. 그것이 내가 배운 사회복지의 본질이고, 글을 쓰는 이유이며, 살아가는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