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라는 존재
노화증상 앞에서는 누구도 예외가 없다. 아무리 멋지게 살아온 사람도, 돈이 많은 사람도, 존경받던 사람도 결국엔 아프고 늙고, 조금씩 스러져간다. 치료가 더 이상 의미 없다는 순간, 그때 우리는 무엇을 바라보고, 무슨 마음을 품어야 할까. 나는 생각한다. 행복하게 보내드리고 싶다고. 마지막까지 사랑받는 느낌, 고마운 느낌, 따뜻한 느낌으로 채워드리고 싶다고.
그런데 쉽지 않다. "어지럽다…" 엄마가 흔들리는 몸을 겨우 일으켜 한 발 내딛지 못할 때, 딸인 나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누워 지낸 시간이 길어 근육이 다 빠져버린 몸. 집으로 왔다고 갑자기 괜찮아질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버텨주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천천히 해보자 엄마" 다독여본다. 새벽 네 시. 산소호흡기에서 들려오는 작은 기계음에 잠에서 벌떡 깬다. 엄마 얼굴 옆으로 삐뚤어진 산소마스크, 메마른 입술, 숨이 가쁜 얼굴. "그냥 빼면 안 되겠니…" 엄마의 그 한마디에 마음이 덜컥 내려앉는다. 산소포화도 87. 조심스럽게 마스크를 벗기고 코줄만 남긴 채 숨 고르게 해 드린다.
새벽 다섯 시. 화장실에 가고 싶다는 엄마. 밤새 잠 못 드셨을 엄마를 부축해 조심조심 걷는다. 아, 병원에서는 잘 나오지 않던 소변이 쏟아지는 순간… 별 것 아닌 이 순간이 눈물이 나도록 감사하다. 살아 있다는 건 이렇게 사소한 것도 기적이구나.
샤워를 제안했을 때 엄마가 "그래, 해보자" 하셨다. 그 말 한마디가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7kg 빠진 몸, 볼살이 쏙 들어가 큰 눈이 도드라진 얼굴, 힘없이 가는 종아리, 그마저 사랑스럽다. 엉덩이 상처에 약을 바르고, 팔에 남은 주사 자국을 닦아주고, 로션까지 바르니 엄마 얼굴에 옅은 미소가 번진다. 그 웃음 하나면 나는 다 괜찮다. 나는 안다. 이 시간이 얼마나 귀한 시간인지. 얼마나 짧을 수 있는 순간인지.
깊은 잠을 잘 수 없는 이유가 엄마 때문이다. 엄마가 숨 쉬는 소리, 기계음, 작은 기척 하나에도 내 잠은 깨버린다. 그리고 그런 내가 또 감사하다. 엄마가 여기, 내 옆에 살아있다는 사실만으로. 아픔도, 슬픔도, 죽음도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다. 엄마가, 그리고 언젠가는 나도 감당해야 할 몫이다.
억울해할 일도, 서운해할 일도 아니다. 그저 껴안고, 안아주고, 함께 울고 웃어줄 뿐. 병원 침대가 아닌 우리 집 거실. 엄마 얼굴을 보며 밥을 먹고, 잠 못 드는 새벽, 엄마 얼굴을 바라본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딸이다.
나는 여전히 상상한다. 엄마가 다시 건강해질 거라고. 조금 더 걷고, 조금 더 드시고, 조금 더 오래 내 옆에 있어줄 거라고. 그리고 그 상상은 내 안에서 자라 또 하나의 기도가 된다. 살아있으니, 오늘도 감사하다. 살아있으니, 오늘도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