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라는 존재
항암 3개월 차. 혼자 일어나기 힘들어 뭔가를 짚어야 겨우 일어난다. 새끼발가락부터 부풀어오른 발은 걷기조차 고통스럽다. 부작용을 완화하는 약을 먹으면서도 항암치료는 계속된다. 약을 먹어도 큰 효과가 없으리란 걸 알면서도, 먹는다. 중심을 잘 잡지 못하면 넘어질 것 같아 늘 조심스럽다.
엄마도 겉모습은 멀쩡해 보인다. 전혀 아파 보이지 않는다. 먹는 것도 잘 먹는다. 그래서일까, 거동이 불편한 걸 알면서도 외출하거나 식탁으로 움직일 때, 준비가 느린 엄마를 바라보며 답답해 했다. 그런 엄마을 난 마음을 헤아리기보다, 어느새 얼굴을 굳히고 조급해져 있었다. 말도 곱게 나오지 않았다.
처음 겪어보는 부종이다. 그냥 붓기만 하는 게 아니었다. 통증은 심하다. 견디기 어려운 날이 많다. 발을 잘못 디디기라도 하면 고통이 밀려와 비명을 지르게 된다. 몸에서 가장 먼 곳, 발가락과 손가락부터 문제가 시작된다. 붓고, 빨갛게 변하고, 가렵고, 따갑고, 살이 벗겨진다. 약도 소용없는 시기가 온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나보다 훨씬 오랜 세월, 훨씬 더 심한 고통을 견디며 살아온 엄마가 있다. 그 고통을 나는 제대로 들여다본 적이 없었다. 보려 하지도 않았다. 그저 '조금 불편하시구나' 생각했을 뿐이다. 발목을 파고든 양말 자국조차 아무렇지 않게 지나쳤다. 늘 그런 모습이었기에.
하지만 이제는 다르게 보인다. 내가 겪어보니 알겠다. 바보 같은 딸이었다. 어쩌면 이렇게라도 겪어봐야 알 수 있었던 걸까.
엄마 발목의 움푹 팬 양말 자국. 그건 고통의 깊이였다. 나는 그동안 운동 부족이라 그런 줄 알았다. 족욕을 자주 안 해서 그런 줄 알았다. 그렇게 남 일 이야기하듯 툭툭 말해왔던 내가 부끄럽고 미안하다.
얼마 전 엄마는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퇴원하셨다. 병원에서는 몸무게를 줄여야 한다고 했다. 살이 찌면 호흡이 힘들고, 몸에 이산화탄소가 남아 의식을 잃을 수도 있다고 했다. 퇴원하며 산소호흡기, 산소포화도 측정기, 다양한 장비들이 함께 집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놀랍게도, 퇴원 후 엄마의 종아리는 예전과 달라졌다. 붓기가 빠지자 일반 노인의 종아리처럼 가늘어졌다. 움직임도 훨씬 부드러워졌다. 엄마의 컨디션이 서서히 회복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제는 내가 붓고 아프고 고통을 견디는 사람이 되었다.
이런 시간이 아니었다면, 발과 다리가 붓는다는 게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 알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그동안 다른 사람의 아픔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쉽게 판단하고 말해왔다. 표현하지 않으셨지만, 엄마는 그런 내 말에 얼마나 서운하셨을까.
아파보니 알겠다. 아픈 시간이 길어지니 더 선명하게 보인다. 엄마가 그 몸으로, 그 고통 속에서, 퇴근하는 딸을 매일 기다려주던 그 모습이 이제야 마음 깊이 떠오른다. 상상만 해도 울컥하다.
아픈 엄마와 비슷한 시간을 겪으며 이제야 조금은 다른 눈으로 아픔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모든 아픔에는 이유가 있고, 그 끝에는 반드시 어떤 결과가 있다. 결국, 받아들이는 사람의 생각이 가장 중요하다는 걸 조금씩 배워간다.
삶은 알 수 없다.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어떻게 살아가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몸이 변하고, 환경이 변하고, 마음이 변해도, 그것을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는 결국 내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