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라는 존재
엄마는 한 가지 얼굴만 가지고 살지 않았다. 내가 알고 있는 엄마들은 모두 다른 방식으로 살아왔다. 누군가는 말로, 누군가는 음식으로, 누군가는 걱정으로 사랑을 표현했다. 그 방식은 달랐지만, 그 마음만큼은 모두 ‘엄마’였다.
여든을 넘긴 한 엄마는 자식의 돌봄 없이는 하루도 살기 어렵다. 보행기를 밀고 겨우 화장실을 가고, 식사 준비도, 옷을 입는 것도 혼자 할 수 없다. 하지만 자식이 옆에 있을 때는 누구보다 강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한다. 특히 아들이 옆에 있으면 그 목소리는 더 커진다.
자신이 아직 살아 있고, 무너지지 않았다는 걸 그렇게라도 증명하려는 듯하다. 그 목소리에는 자신을 지켜온 힘이 있고, 그 힘을 존중해 주는 자식들이 있다. 따뜻한 집, 정성스러운 음식, 서로 걱정해 주는 일상이 그녀의 하루다. 그것이 삶을 지탱해 주는 유일한 기둥이다. 또 다른 엄마는 음식을 통해 사랑을 전한다. 무엇을 먹일까 늘 고민하고, 당뇨 환자에게는 당을 조절한 반찬을, 항암 치료를 받는 가족에게는 위에 부담 없는 죽을, 건강한 자식에게는 잘 차려진 식단을 준비한다.
그녀의 밥상은 항상 다르지만, 그 안에 담긴 마음만큼은 늘 같다. 어린 시절 감자와 옥수수, 밀가루로 배를 채워야 했던 기억이 지금의 그녀를 부지런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먹는 모습만 봐도 좋고, 맛있다고 하면 다음 날 또 같은 음식을 해 둔다. 사랑은 그렇게, 부엌에서 피어나는 일이었다.
어떤 엄마는 늘 걱정이 많았다. 형제들이 아프다고 하면 본인도 같이 더 아프다고 한다. 주변에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잠도 이루지 못한다. 무엇이든 먼저 말하고 나중에 생각하는 성격이라 중환자실에서 입원실로 옮긴 환자를 샤워키킨다. 의사와 간호사의 말보다 즉흥적인 본인이 생각이 옳다고 하기도 한다. 기운이 없는 사람에게 큰 무리를 준 셈이지만 그녀는 오히려 걱정하며 화를 낸다.
이후 건강해진 상황에서 다른 사람이 샤워를 시키면 위험하게 왜 하냐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실제로는 본인가족과 본인의 건강을 더 챙기고, 주변이 힘들어도 본인의 일정은 우선순위에서 밀리지 않는다. 그러나 급한 전화에 반응이 없으면 금세 불안해진다. 걱정했단 말을 입에 달고 다니며, 그렇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관심과 사랑을 보여준다.
그리고 어떤 엄마는 평소에 아무 말도 없다가 어느 날 갑자기 음식을 챙겨 들고 나타난다. 시댁의 일은 남편 몫이라며 선을 긋고, 자식이 늦는 날에는 수십 번씩 전화를 걸어 안심하고서야 잠이 든다. 건강 염려증이 있어 본인의 몸을 꾸준히 관리하고, 자식이 건강하기만 하면 그걸로 만족하는 사람. 대화도, 교류도 없이 갑자기 찾아온 그녀를 보고 시어머니는 잠깐 당황하지만, 그래도 "고맙다"며 웃어넘긴다. 그 엄마는 그런 식으로 사랑을 전하고, 그녀의 세계에서 가족은 그렇게 굴러간다.
마지막으로 내가 잘 아는 엄마는, 병든 몸을 이끌고 친정엄마를 돌본다. 가족이 직접 케어해야 한다는 믿음으로 시설은 고려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그렇게까지 해야 하냐”라고 하지만, 그녀는 “가족이기 때문에”라고 말한다.
시설이 안전하고 의료서비스가 잘 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가족의 부재는 심리적으로 불안정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부모가 두려워하는 부분이 잘 알고 있는 모습은 남들이 볼 때는 미련하고 무모한 행동일 수 있다.
매주 항암을 받으면서도, 막 제대한 아들이 독립하겠다고 해도 “그래, 잘 살아봐” 쿨하게 보낸다. 부모의 병과 자식의 삶은 별개라 믿는다. 그래야 모두가 살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 그녀는 아프면서도 운동을 하고, 지치면서도 글을 쓰며, 자신을 객관화하고자 노력한다.
조금씩 거리를 두는 것, 혼자 살아가는 법을 익히는 것이 결국은 가족을 지키는 방법이라 여긴다. 엄마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엄마였다. 누구도 틀리지 않았다. 누구도 잘못된 길을 걸은 것은 아니었다. 시대의 요구에 맞춰, 가족의 필요에 맞춰, 자신의 방식으로 ‘엄마’라는 무게를 감당했다. 엄마의 생각이 꼭 정답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마음은, 그 삶은, 그대로 정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