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라는 존재
사람이 아플 때는 그저 아픈 것만 나았으면 한다. 하지만 조금 나아지면, 이제는 건강한 몸을 유지하는 일보다 다른 욕망이 서서히 마음속을 차지한다. 산소호흡기와 산소생성기를 병행해 사용하시던 엄마는 이제 산소포화도가 정상으로 나와 우리 모두 안심이 되었다. 몸을 움직이시는 일에 조금씩 긍정적인 반응도 보이신다.
요즘은 가족끼리 벚꽃구경 다녀오라는 인사를 주고받는다. 그러다 일요일 오전, 둘째 언니가 현관을 열고 들어서며 “잠깐 산책이라도 나가야 정신 건강에 좋아”라고 말한다. 엄마에게 얼른 옷을 입혀 휠체어에 모시고 나갈 준비를 한다. 큰언니와 나에게도 함께 가자고 권하지만, 나는 손발이 부어서 걷기가 힘들다.
채 1분도 지나지 않아 문이 벌컥 열렸다. 바람에 머리가 엉망이 된 채로 들어온 엄마는 “얼어 죽겠다”라고 하신다. 갑자기 비바람이 몰아쳤던 것이다. 창밖을 보니 빗줄기가 무섭게 떨어지고 있었다. 세 자매는 식탁에 앉아, 꽃잎이 다 떨어지겠다고 걱정하며 다시 식빵을 먹기 시작했다.
잠시 후, 택배로 주문한 청국장이 도착했다. 두부를 넣고 끓여 먹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비가 그치면 살살 걸어가 봐야지 마음먹고 있었다. 오전 11시가 되자 엄마의 든든한 힘, 아들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비 오는데 어떻게 왔어?”라며 웃으시는 엄마 얼굴에 행복이 번졌다. 주말 오전, 사형제가 모두 모였다. 엄마 마음의 최고 순간이었을 것이다.
비가 멈추자, 엄마가 오빠를 바라보며 “나, 밖에 좀 다녀오고 싶은데”라고 말씀하신다. 뭔가 하고 싶다는 말을 엄마 입에서 직접 들은 건 처음이다. 병원에서 밤 간호를 전담하며, 오빠에게 편하게 마음을 열게 되신 듯하다. 자식이지만 말을 꺼내기조차 조심스러운 엄마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다.
엄마께 겉옷을 입혀드리고, 모자와 마스크를 씌워드렸다. 나는 발이 아파 나가기를 포기하고 “잘 다녀오세요”라고 인사를 드렸다. 시장바구니를 오빠에게 건네며 “두부, 딸기, 바나나만 사 오면 돼요”라고 부탁했다.
5분쯤 지나 단톡방에 사진이 하나 올라왔다. 놀이터에서 운동기구 앞에 선 엄마의 모습이었다. 사진만으로도 엄마의 의지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퇴원 후 건강이 호전되며, 밖에서 활동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느껴졌다.
아들과의 데이트는 처음이었다. 놀이터에 가는 것도, 시장을 보는 것도. 평범한 일상이지만, 죽을 고비를 넘어야만 가능한 시간이 되었다.
한 시간쯤 지나 휠체어를 타고 엄마가 돌아오셨다. 손에 검은 봉지 하나를 들고 계셨다. ‘힘드셔서 두부 하나만 사 오셨겠지’ 생각하며 얼른 받아 냉장고에 넣었다. 그런데 잠시 후, 휠체어 손잡이에 걸린 시장바구니를 꺼내 놓으신다. 바구니 안에는 멸치, 브로콜리, 표고버섯, 바나나, 딸기가 한가득 들어 있었다.
“다 꼭 필요한 거라서 샀어,”라고 하시며, 야채값이 얼마나 비싸던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내쉬신다. 그래도 가족이 함께 요리를 해 먹을 생각을 하시며 한편으로는 든든해하시는 모습이다. “10만 원도 넘게 나왔어,” 하시며, 시장에서 받은 쿠폰을 내게 건네주셨다. “요양보호사님이 챙겨준 거랑 같이 잘 보관해 둬.”
나는 별다른 말 없이 “고생하셨어요”라고만 했다. 그런데 엄마는 자꾸만 나를 바라보셨다. 나는 왜 엄마가 자꾸 그렇게 보시는지 눈치채지 못했다. 과일과 야채를 냉장고에 넣고 휠체어를 정리하는 오빠에게 “얼마 들었어? 말해 봐” 하신다.
오빠가 머뭇거리자, “엄마, 말도 안 되는 소리 왜 하세요?”라고 한다. 하지만 엄마는 단호했다. 시장을 봐 왔으니, 그 돈은 자식이 줘야 한다는 것이다. 아들 돈을 쓰는 게 마음 아픈 엄마. 그 이론이 정확히 맞다.
우리는 한참을 웃었다. 그리고 “엄마, 못 드려요. 오빠만 일하지. 나랑 언니는 직업도 없는데 ”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엄마는 잠시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으셨다. 고생하며 일하는 아들에 대한 미안함, 딸들이 그 고생을 모르고 있다는 서운함이 담긴 표정이었다.
아들을 끔찍하게 아끼는 엄마는 운동도 하시고, 시장도 다녀오셨다. 비록 시장을 봐온 돈을 아들에게 돌려주진 못했지만, 그 금액보다 훨씬 큰 행복과 활력을 가족에게 안겨주셨다.
엄마의 그 사랑스럽고 든든한 모습이, 우리 사형제의 기억 속에 오래도록 남기를 기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