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얻는 지혜 / 발타자르 그라시안 / 현대지성
4부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은 가장 위대한 일이다.
관계
131. 고상한 정신은 충분히 복수할 기회가 있을 대 하는 행동으로 드러난다.
고상한 정신을 가진 사람은 마음이 우아하고, 생각이 담대하다. 그는 자신을 과시하지 않는다. 조용히 선을 쌓고도 드러내지 않는다. 그래서 더 빛난다. 관대함은 단단한 영혼에서 온다. 모두가 이런 마음을 갖는 것은 아니다.
나는 오늘, 일상 속에서 그 고상함과 거리가 먼 얼굴도, 그 마음을 가진 사람도 만났다.
교회에 가는 길, 모퉁이에 자리한 ‘최고김밥’. 매주 눈에 띄어 언젠가 사 먹어봐야지 생각했던 곳이었다.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중 다시 그 앞에서 발걸음이 멈췄다. 기본으로 야채김밥이 보인다. 기본 맛이 그 집의 품을 보여준다고 믿는 나는 세 줄을 주문했다.
“사장님, 야채김밥 세 줄이요.”
그러나 내 말은 허공으로 흩어졌다. 주문을 확인하지도 않은 채, 얼굴에 짜증을 그대로 담은 채 김밥을 말기 시작한 사장. 남편이 다가와서야 “야채 세 줄?” 하고 묻는다. 젓가락이 필요하냐는 물음에도, 나는 “괜찮아요” 하고 서둘러 가게를 나왔다.
김밥을 들고 나오며 생각했다. 동네 장사란, 결국 마음을 파는 일인데… 저렇게 해도 괜찮을까.
마침 친구가 집 주차장에 도착했다는 전화를 했다. 전해줄 것이 있다며 기다리고 있다고. 예전엔 늘 미리 연락을 주던 친구. 내가 먼저 나가 기다리고, 바람이 차다고 하면 따뜻한 음료를 챙겨가며 맞이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내가 아프다는 사실이 우리 사이의 예의를 바꿔 놓았다. 친구는 미리 연락하지 않는다. 내가 힘들까 봐. 오히려 도착해서야 전화를 한다. 내가 나오려 하면 “올라갈게” 하고 말린다.
그 친구는 본인 아버지와 먹으려고 샀던 만두를 내 생각이 났다며 두 팩 들고 오고, 병원 가는 길에 일부러 들렀다며 녹두죽이며 소고기를 손에 들려 준다.
고마움이 미안함을 넘어 마음 깊은 곳까지 파고든다.
“너가 아프니까. 그러니까 빨리 나아.”
친구는 늘 그렇게 말한다. 말보다 마음이 앞서는 사람. 배려를 선 넘게 하는 사람. 그 따뜻함이 친구의 차가 멀어질 때까지 내 가슴에 남아 잔잔히 흔들린다.
오늘, 두 가지 마음을 보았다.
무심함과 고상함.
그리고 나는 깨닫는다.
고상한 정신이란, 거창한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