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림도 인생의 일부니까

by 또 다른세상

사람을 얻는 지혜 / 발타자르 그라시안 / 현대지성

4부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은 가장 위대한 일이다.


관계

134. 인간의 연약함에 대비해 두배의 자원을 준비하라.

삶에서 필요한 자원을 두 배로 늘리라. 그러면 삶도 두 배로 깊어진다. 아무리 뛰어난 자원이라도 그것 하나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 자연이 가장 중요하고 위험에 노출되는 신체 기관—눈, 귀, 손, 발—을 두 개씩 준 이유도 그 때문이다. 인간의 연약함을 보완하기 위해서다. 우리 역시 기술과 경험, 마음의 자원을 통해 삶의 불안을 대비해야 한다.


최근 다니는 학교에서 [사회복지의 윤리와 철학]이라는 과목을 듣게 되었다. 제목부터 ‘어렵다’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게다가 이번에는 ‘윤리적 딜레마와 윤리적 의사결정’이라는 주제로 조별 과제가 주어졌다. 네 명이 한 조를 이루었는데, 평소에는 서로 말을 많이 섞지 않던 사이였다. 그러나 조가 구성되자 조금씩 분위기가 달라졌다. 어색함 속에서도 말을 붙이고, 역할을 나누기 위한 대화가 오갔다.


“자료 정리, PPT 제작, 발표를 누가 할까요?”


그 순간 네 사람의 시선이 서로를 피했다. 모두의 마음속에는 ‘다른 건 해도 발표는 못 하겠다’는 말이 떠올랐을 것이다. PPT 제작도 ‘나이든 사람이 어떻게 하냐, 젊은 사람이 해야 한다’며 눈치 싸움이 이어졌다. 학창 시절 자유롭게 의견을 말하지 못했던 시대를 살아온 나는, 여전히 “네, 알겠습니다.”라는 말로 대답하던 습관이 남아 있었다.


결국 누군가 “OO쌤이 잘하실 것 같아요.”라고 말했고, 다른 사람들도 그 의견에 동조했다. 그렇게 나는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발표자가 되어버렸다. 억울함을 느낄 틈도 없이 발표일은 다가왔다.


교수님은 종종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해한 것만 말하면 됩니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발표를 통해 자신의 성장을 경험해 보세요.”

하지만 발표자 입장에서는 그 말조차 부담스러웠다.


책에는 ‘윤리적’, ‘딜레마’, ‘의사결정’이라는 단어가 반복되어 있었다. 눈은 책을 따라가지만 머릿속은 점점 하얘졌다. 발표 시나리오를 써보지만, 직접 읽어 내려가도 혀가 꼬이고 발음이 새어나왔다. ‘이걸 과연 해낼 수 있을까?’라는 불안이 점점 커졌다.


잠시 쉬며 휴대폰을 들여다보니, 단체 채팅방에 “파이팅!” “잘 하실 거예요!” 같은 응원 메시지가 올라와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엔 그 응원이 오히려 ‘고문’처럼 느껴졌다. 잘 모르는 내용을 사람들 앞에서 말해야 한다는 사실이 그만큼 두려웠다. 교수님은 “그 과정 자체가 배움의 시간”이라고 했지만, 그 말이 가슴에 와닿지 않았다.


그러나 어느 순간 마음속에서 이런 목소리가 들려왔다.

‘에잇, 언제 해보겠냐? 떨리면 어때? 이 시간도 내 인생의 일부잖아.’

맞다. 두려움이 영원히 계속되지는 않을 것이다. 생각의 차이 하나로 세상이 달라진다. ‘못하겠다’고 생각하면 한없이 어려워지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조금은 가벼워진다.


‘이 나이에 뭐~ 또 어디로 도망가려구!’ 스스로에게 말을 건넸다.


발표 시나리오를 다시 읽고, 문장을 다듬고, 청중과 눈을 마주칠 부분을 만들어 보았다. 청중 앞에 서는 것이 두렵다면, 그 두려움을 극복하면 되는 것이다. 설령 이번 발표가 엉망이 되더라도, 그 용기만큼은 칭찬받을 만하다.


삶에서 필요한 자원을 두 배로 늘린다는 건, 단지 물질적인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못하겠어’라고 말하던 일을 ‘해봤어’로 바꾸는 것, 그것이야말로 내 안의 자원을 확장하는 일이다. 두려움을 이겨내는 용기, 실패 속에서도 다시 시도하는 힘, 그것이 내가 스스로 준비할 수 있는 가장 큰 자원이다.


오늘, 용기 낸 나 자신에게 이렇게 말해 주고 싶다.

“어떻게 발표했든 잘했어. 도망치지 않고 마주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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