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얻는 지혜 / 발타자르 그라시안 / 현대지성
4부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은 가장 위대한 일이다.
관계
133. 혼자 미치는 것보다 다수와 제정신인 것이 낫다.
혼자 제정신인 것보다 모두와 미치는 게 낫다고, 정치인들이 자주 말한다. 만약 모두가 미쳤다면, 그들 중 누구도 미친 사람이 아닐 것이다. 혼자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신에 가깝거나, 아니면 짐승과 같은 일이다.
암 진단을 받고도 오랫동안 나는 스스로를 환자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항암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몸은 변해갔다. 얼굴이 검게 타고, 입술선은 사라지고, 목까지 색이 변했다. 가족들은 외출할 때마다 “목을 가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 말이 걱정인지, 시선에 대한 염려인지 헷갈렸다.
한여름, 민머리 위로 모자를 눌러썼다. 열이 오르면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고, 머리에는 금세 땀이 흘렀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스스로에게 물었다. ‘내가 왜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해야 하지?’
나는 암 환자다. 지금 열이 나고, 몸이 아프다. 그런데 왜 정상인 척해야 하지? 그 생각이 들자 갑자기 모자를 벗었다. 걸을 때 힘이 들면 우산을 지팡이 삼아 걸었다. 그 모습이 조금 이상해 보여도 괜찮았다.
대중교통을 탈 때면 춥기도 하고, 한여름에도 두꺼운 옷을 입을 때가 있다. 학교 교실에서도 마찬가지다. 에어컨이 너무 차면 겉옷을 챙겨 입고, 누군가 그걸 보고 온도를 높여주기도 한다. 나는 굳이 아픈 티를 내지 않는다. 내 몸 상태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는 걸 이제야 안다. 아픈데도 타인의 눈치를 보느라 더 아프게 만드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문제는 가족이다. 그들은 나를 여전히 ‘치료 중인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 무너지지 않는 사람, 여전히 딸이고, 강인한 엄마이자, 때로는 형제 같은 사람으로 본다. 그 기대가 부담스러울 때도 있지만, 동시에 나를 버티게 하는 힘이기도 하다.
나는 아직도 하고 싶은 게 많다. 글을 쓰고 싶고, 공부도 계속하고 싶다. 치료가 언제쯤 끝날지 모르지만, 그 끝을 ‘삶의 끝’과 겹쳐 놓지 않기로 했다. 주위를 보면 나보다 더 힘든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버티는 사람들이 있다. 항암을 받으면서도 사업을 이어가는 사람, 말기의 몸으로 혼자 치료를 다니는 사람.
그들은 어쩌면 제정신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의 그 ‘광기’는 경이롭다. 그렇게 말하고 싶다. “그래, 살아 있는 한 한순간도 헛되이 보내지 말자.” 그들이 제정신이 아니라면, 나 역시 그들과 함께 미쳐도 좋다. 살기 위해, 단 하루를 더 뜨겁게 살아내기 위해서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