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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기술보다 태도의 힘

by 또 다른세상


사람을 얻는 지혜 / 발타자르 그라시안 / 현대지성

4부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은 가장 위대한 일이다.


관계

135. 집요함이 지나치며 어리석음과 분노만 남는다.

항상 반박하려고 하지 말라. 무언가에 지나치게 집착하면 결국 어리석음과 분노만 남는다. 자신의 옳음을 증명하려는 마음, 상대를 설득하려는 집요함은 결국 나를 소모시킨다. 항상 반박하려 하지 말자. 가장 맛있게 먹던 생선에서 걸리는 뼈가 가장 아프듯, 행복한 순간에 찾아오는 반대는 유독 마음을 흔든다.


그 순간, 이성을 잃고 맞서 싸우는 대신 잠시 멈추는 것이 현명하다. 어리석은 사람은 해롭다. 다루기 어렵고, 사납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깨닫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오늘 발표를 준비하면서도 그 생각이 떠올랐다.


완벽하게 하고 싶었다. 단 한 번의 실수도, 단 하나의 공백도 남기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긴장이 더해졌다. 목소리가 떨리고, 머리가 하얘졌다. 그래서 마음을 고쳐먹었다. “나는 전문 강사가 아니다. 사람들 앞에 서는 일도 자주 하지 않는다. 오늘은 함께 참여하는 시간으로 만들고 싶다.”


이 말을 미리 준비해 두었다. 부족함을 인정하는 것이 곧 출발점이라는 걸, 이번엔 믿어보기로 했다. 발표가 시작되자 예상보다 많은 눈이 나를 향했다. 처음엔 그 시선이 버거웠다. 하지만 천천히 숨을 고르며, “저는 완벽하지 않습니다. 함께 생각을 나누는 시간을 갖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그 순간, 몇몇 청중이 고개를 끄덕였다. 긴장감이 조금씩 풀렸다.

나는 질문을 던졌고, 답을 들을 땐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고개를 끄덕이며, “좋은 의견이네요.”라고 덧붙였다. 작은 칭찬 한마디에 청중의 표정이 달라졌다. 그들의 말 한 줄 한 줄에 ‘당신의 생각을 존중합니다’라는 나의 마음이 담겼다.

발표가 끝난 뒤, 한 학우가 사진과 동영상을 보내주었다. 집에 돌아와 영상을 보며 스스로를 평가했다. 나는 발표 내내 “사실은”, “정말”이라는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손은 가만히 있지 못했다. 맞잡았다가 폈다가를 반복했다. 장표와 장표 사이의 연결도 매끄럽지 않았다. 몸이 흐느적거리고, 시선이 자주 흔들렸다.

그런데도 청중의 집중도는 나쁘지 않았다. 그들의 눈빛이 화면 속에서 느껴졌다. 나는 완벽하지 않았지만, 솔직했다. 그 솔직함이 어쩌면 발표를 살린 것 같았다. 발표 도중 교수님께서 부연설명을 덧붙여 주셨다. 나는 고개를 숙이며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했다.


까다롭기로 소문난 학우도 질문을 던졌다. 그때마다 “좋은 지적이에요.”라고 대답했다. 그의 참여가 고마웠다. 발표가 끝난 후 그 학우가 다가와 “오늘 발표 좋았어요.”라고 말했다. 짧은 인사였지만 마음이 따뜻해졌다.


상대를 인정하고 경청하려는 태도가 결국 나를 편안하게 만들어주었다. 한 시간이 지나자 교수님이 잠시 쉬자고 하셨다. 나는 마침내 의자에 앉아 깊은 숨을 내쉬었다. 손끝이 떨리고 있었지만, 마음은 이상하리만큼 평온했다. “들려주는 만큼만, 보여줄 수 있는 만큼만 하자.” 발표 전 나 자신에게 수없이 되뇌던 그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결국, 나는 내가 원하는 대로 발표를 마칠 수 있었다. 모든 것이 완벽하진 않았지만, 사람들과의 시선이 마주쳤다. 그들의 눈빛 속엔 나를 향한 신뢰와 이해가 있었다. 그 덕분에 더 이상 떨리지 않았다. 그럭저럭 끝낼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 내 부족함을 먼저 인정했기 때문이다. 청중은 나의 전문성이 아니라, 진심을 본다.

완벽하게 준비된 강연보다, 흔들리더라도 솔직한 한마디가 더 오래 남는다. 나는 그날, 말의 기술보다 태도의 힘을 배웠다.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이 발표의 품격을 만든다는 사실을 몸으로 느꼈다. 다음에는 좀 더 차분하게 서고 싶다. 말보다 마음이 먼저 전달되는 발표, 지식을 나누는 시간이 아니라 마음을 나누는 자리를 만들고 싶다.


그때는 집요하게 완벽을 좇기보다, 겸손하게 순간을 받아들이리라. 누구의 시선에도 흔들리지 않고, 내 말의 온도를 지켜가며. 집요함 대신 진심으로. 그것이 결국, 나를 성장시킨 발표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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