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얻는 지혜 / 발타자르 그라시안 / 현대지성
4부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은 가장 위대한 일이다.
관계
136. 변죽만 울리지 말고 바로 문제의 핵심으로 들어가라.
문제의 핵심을 파고들라. 변죽만 울리지 말고 바로 문제의 핵심으로 들어가라. 우리는 흔히 문제의 본질을 지나치고, 불필요한 말과 추리로 시간을 허비하곤 한다. 쓸데없이 주변을 배회하며 에너지를 낭비하는 동안, 정작 해야 할 일에는 이미 시간과 인내심이 바닥나 있다.
외박 나온 아들이 늦은 저녁에 집으로 들어왔다. 현관문을 여는 소리가 요란하다. 술 한잔 기운이 감도는 듯하다. 반가움에 살짝 모습을 내밀어 바라보니, 아들은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만 하고 바로 욕실로 들어갔다. 두 아이 모두 휴가를 맞아 집에서 조용히 지내지 않는다. 약속을 미리 잡는지, 바쁘게 왔다가 외출하고, 다시 돌아온다.
씻고 나온 아들은 자기 침대에 눕자마자 잠을 청한다. 나는 불이 켜진 방문을 열고 “춥지 않아? 이불 제대로 덮고 자야지.” 하며 조심스럽게 이불을 끌어 덮어준다.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아들에게 엄마가 아프다는 핑계로 면회 한 번 가지 못했다. 얼굴에는 여드름이 듬성듬성 난 채 눈을 감고 있었지만, 잠이 들지 않은 듯 살짝 눈을 뜨며 “괜찮아요.” 하고 말한다.
친구들과 잘 지냈냐고 묻자, 아들은 한강에 다녀왔다고 이야기했다. 한강버스를 타보며 공무원이란 직업이 힘들겠다는 생각도 했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의 미래 계획을 조심스럽게 이야기한다. 공무원 시험은 뒤로 미루고 다른 길도 고려하고 있다며, 복학하면 바빠질 테니 필요한 자격증은 미리 준비해 놓겠다는 말까지 했다.
부대에서의 생활을 물었다. 한 달 뒤면 병장이 된다. 고참이 되었지만, 자신이 이병 때 받았던 관리처럼 후임에게 규정에 어긋난 행동을 지적할 수 없다고 한다. 새벽 운동으로 달리는 것이 마땅하지만, 대부분이 핑계를 대고 달리기를 하지 않는다. 아들도 솔직히 본인도 달리기하기 싫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부대 내에서 바지에 손을 끼고 다니면 지적 대상이지만, 말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된다는 이야기도 했다. 나는 아들의 삶에 그런 선택들이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 물었다. 지적을 하든 일부만 지키든, 다른 사람의 행동이 피해를 주는 것은 아니다. 단지 손해 보는 기분이 들 수 있을 뿐이다. 직장에서도, 학교에서도, 군대에서도, 지켜야 할 규범을 지키는 사람이 결국 맞는 길을 가는 법이다. 쉽고 편한 길만 좇다 보면, 인생에서 중요한 기회를 놓칠 수 있다.
아들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 역시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위해, 단체가 요구하는 규범을 알고 따른다. 처음 참여할 때는 목적이 분명하지만, 어느 순간 방향을 잃기도 한다. 글쓰기 모임, 책 읽는 모임, 자격증을 위한 공부 모임 등, 그 안에서 최소한 지켜야 할 원칙이 있다.
가끔 다른 사람의 눈치나 말이 옳지 않음에도 따라가거나 동조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그럴 때 나는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야 ‘아, 이것은 아니다’라고 깨닫는다. 무엇을 하든, 본래의 동기와 꾸준함을 유지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긍정적인 미래의 모습을 상상하며 나아가야 한다.
더 좋은 생각, 밝은 마음으로 시간을 채워갈 때, 우리는 비로소 인생의 중심을 잡는다. 변죽만 울리며 맴돌지 말고, 문제의 핵심으로 바로 들어가라. 그 한 걸음이 내 삶을 희망으로 향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