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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만족의 함정, 들을 줄 모르는 마음

by 또 다른세상

사람을 얻는 지혜 / 발타자르 그라시안 / 현대지성

4부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은 가장 위대한 일이다.


관계

140. 지나친 자기만족은 경멸을 부른다.

자기 말만 듣지는 말라. 남들은 만족하게 하지 못하면서 자기만족에만 빠져 잇는 건 별 도움이 안된다. 보통의 자기만족은 경멸을 부르기 마련이다. 자기 말만 하고 싶어 한다면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들을 수 없다. 그들은 말할 때마다 어리석은 사람들이 내뱉는 “지당한 말씀!”이라는 역겨운 인정을 받으려고 한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자신의 생각이 굳어지는 사람들을 자주 본다. 인생의 경험이 늘어가면서 지혜가 깊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고의 틀에 갇혀 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자신이 더 잘 알고, 더 옳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 확신은 종종 타인의 생각을 배척하는 완고함으로 변한다. 대화가 어려워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가족 관계 안에서도 이런 장면은 낯설지 않다.


자녀가 어릴 때는 문제가 없다. 부모의 말이 곧 진리였고, 아이는 순종했다. 하지만 사춘기를 지나고 성인이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자녀는 자신만의 생각을 주장하고, 부모는 여전히 옳은 길을 가르치려 한다. 두 마디가 오가기도 전에 의견 충돌이 생기고, 서로의 말이 상처로 남는다. 결국 침묵이 이어지고, 어색한 시간이 흐른다. 아이는 ‘엄마는 내 말을 듣지 않는다’고 느끼고, 부모는 ‘요즘 아이는 왜 이렇게 예의가 없을까’ 생각한다. 사실 문제는 세대의 간극이 아니라, ‘듣지 않음’에서 비롯된다. 듣는 척하지만 이미 결론을 내려둔 대화 속에서 관계는 점점 멀어진다.


학교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오랫동안 학생을 가르쳐온 교사는 경험이 많고 지식이 깊다. 하지만 그 경력만큼이나 생각이 단단히 굳어 있는 경우도 있다. 학생의 질문은 반항처럼 들리고, 다른 의견은 무례로 여겨진다. 배우는 입장에서는 선생님의 말이 절대적이기에 쉽게 반박하지 못한다. 인사를 소홀히 하면 꾸중을 듣고, 억울해도 그저 고개를 숙인다. 제자는 자신이 잘못했다고 착각하고, 교사는 그것이 교육이라 믿는다. 그 관계 안에서 성장보다는 복종이 남는다.


회사에서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조직 안에서는 상사와 부하직원의 관계가 늘 위계로 나뉜다. 상사의 시선이 긍정적이어야 의견이 반영되고, 말을 꺼낼 수 있다. 그래서 아랫사람은 상사의 말에 맞장구를 치고, 웃음으로 분위기를 맞춘다. 그저 조용히 따르는 것이 안전하다고 느낀다. ‘자기만족에 빠진 리더’는 부하의 침묵을 능력의 증거로 착각한다. 하지만 그 침묵은 존경이 아니라 포기에서 비롯된다.


적당한 자기만족은 분명 필요하다. 그것은 자신을 지탱하고, 흔들리지 않게 하는 내적 안정의 기반이 된다. 그러나 그 만족이 타인의 시선과 인정을 끊임없이 요구하는 방향으로 흐르면, 관계는 삭막해진다. 스스로 옳다고 믿는 확신은 때로는 위로가 되지만, 지나치면 타인을 억압하는 무기가 된다.


나이가 들수록, 사회적 위치가 높을수록 말의 무게는 커진다. 그만큼 조심스러워야 하고, 더 많이 들어야 한다. 경험이 많다는 이유로 상대의 말을 가볍게 여기거나, 젊은 세대의 생각을 단순한 철없음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인생의 연륜은 ‘내가 옳다’는 확신보다, ‘나와 다르다’는 이해로 완성되어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말이 옳다고 믿고 싶다. 하지만 진정한 지혜는 ‘말을 멈추는 용기’에서 시작된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일, 그것이야말로 가장 성숙한 대화의 형태다. 상대방이 자신의 말 속에서 이해받고 있다고 느끼면, 비로소 관계는 회복된다.


자기만족은 자기애의 또 다른 이름일 수 있다. 하지만 사랑이 과하면 집착이 되듯, 자기애가 지나치면 타인을 밀어내는 힘으로 작용한다. 자신만의 생각에 갇혀 남의 말에 귀를 닫는 순간, 우리는 세상과 단절된다. 나의 세상만이 옳고, 나의 기준만이 진리라 여기는 태도는 결국 고독을 자초한다.


적당히 자신을 인정하되, 타인의 생각을 수용할 여백을 남겨두어야 한다. 마음이 단단하되, 굳지 않게. 확신을 가지되, 고집으로 흐르지 않게. 나이 들수록 필요한 것은 권위가 아니라 유연한 사고와 열린 귀다. 그것이 진정한 품격이며, 세상을 부드럽게 연결하는 힘이다.


지나친 자기만족은 결국 자신을 고립시킨다. 타인의 인정에 집착하지 말고, 스스로를 믿되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라. 내가 옳다고 말하기보다,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려는 태도가 더 큰 힘을 가진다. 결국 사람 사이의 온도는 말의 강도가 아니라, 들을 줄 아는 마음에서 결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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