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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물 한 잔, 엄마와 나

by 또 다른세상

케모포트 삽입 수술을 한 지 이틀째.

혈관을 보호하기 위한 안전한 장치라고 설명을 들었지만,

몸속에 기계가 들어앉았다는 사실만으로 불안은 사라지지 않았다.


진통제를 먹으면 금세 졸음이 밀려왔고,

글쓰기 강의 중에도 스르르 잠에 빠져버렸다.

눈을 떴을 때는 새벽 두 시.

허겁지겁 휴대폰을 확인했지만 강의는 이미 한참 전에 끝나 있었다.


그때, 탁한 기침 소리가 귓가에 닿았다.

엄마 방에서 나는 소리였다.


몸을 돌려 눕는다 해도 편할 수 없었다.

왼팔은 수술 부위가 쑤셔 왼쪽으로 누울 수 없었고,

오른쪽으로 몸을 돌리면 목과 쇄골 군데군데 통증이 번졌다.

잠을 위한 자세 하나도 이렇게 어렵고,

그저 편안히 눕는 일이 이토록 소중했다는 것을 그 순간에야 깨달았다.


기침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보온병에는 따뜻한 물이 담겨 있지만,

엄마는 침대에 누운 채 물도 마시지 못하고 기침만 하고 계셨다.


일어나 물을 드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눈꺼풀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몸이 힘들어도 따뜻한 물은 많이 드세요.”

매일 말해왔지만, 엄마는 여전히 기침을 하고 있었다.


찬바람을 조금만 쐬어도 콧물을 흘리고, 기침이 이어지는 계절.

이 물 한 잔이, 꼭 보약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뿐이었다.


엄마의 하루는 약으로 시작해 약으로 끝난다.

밥보다 약이 더 많아졌고,


그 많은 약을 꼬박꼬박 챙겨 드시는 모습이 더 애틋했다.

그 사이에도 엄마는 침대에서 나오지 않고 기침만 하고 있었다.


답답한 마음에 부엌을 살피니,

식탁 위 보온병 두 개는 텅 비어 있었다.


서둘러 커피포트에 물을 올렸다.

엄마 방 불을 켜며 말했다.

“엄마, 나오셔서 따뜻한 물 드세요.”


엄마는 잔잔한 목소리로 말했다.

“물이 하나도 없어.”


챙겨준다는 딸이 따뜻한 물이 없는 것도 몰랐구나.

그제서야 엄마는 천천히 몸을 돌려 일어났다.


포트에선 금세 물 끓는 소리가 났고,

나는 생강청과 꿀 한 숟가락씩을 컵에 넣었다.

큰 머그컵을 엄마 손에 건네며 말했다.


“뜨거우니까 천천히 드세요.”

엄마는 뜨겁다는 말을 듣고도

호호 불어가며 숟가락으로 물을 떠 마셨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마음이 무거워졌다.

엄마를 온전히 돌볼 수 있는 지금 이 시간이,

앞으로 다시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갑자기 선명해졌다.


일해야 하고, 바빠질 날이 오면

이 여유도, 이 밤도 사라질 테니까.

그 어떤 시간보다 잘 챙겨 드려야 했는데.


오늘 나는 엄마의 컨디션을 살피지 못한 딸이었다.


그러나 따뜻한 차 한 잔에 기침이 줄어드는 것을 보며,

적어도 지금은, 이 새벽만큼은

엄마 곁에 있는 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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