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쌀해진 공기가 엄마의 외출을 가로막는다. 아침마다 가슴을 치고 가래에 고통스러워하던 며칠. 다행히 오늘은 숨을 내쉴 때 들리던 소리가 조금 옅어졌다. 더 추워지기 전에, 단풍이라도 보러 나가자며 가족들이 제안했다. 동네 산책조차 어려워진 요즘, 바람이 차가워지기 전 기록해두고 싶은 하루였다.
가다가 힘들면 돌아오자고, 그냥 바람만 쐬어보자고 설득하니, 언니는 다시 고민하다가 조용히 말했다.
“드라이브 하자.”
2년 전, 파주에 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차창 밖으로 보이던 노란 은행나무에 감탄하던 엄마. “예쁘다”라는 말만 반복하던 그 얼굴이 아직도 선하다. 그때는 엄마와 나 단둘이였다. 오늘은 세 딸이 모두 함께다. 언니들은 휠체어를 번갈아 밀어주고, 차에 탈 때도 팔을 받쳐 올려드렸다.
자유로에 접어들었지만, 엄마는 창밖을 보며 감탄하지 않았다. 그저 바람이 세게 분다며 흔들리는 가지를 한 번 바라보더니 이내 눈을 감았다. 조수석에서 고개가 천천히 툭, 떨어진다. 졸음인지, 피로인지. 가끔 잠결에 작은 소리를 내신다. 나는 엄마의 손을 잡았다. 차가운 온기가 전해진다.
“엄마, 창밖 좀 봐봐. 단풍 예쁘지?”
천천히 눈을 뜬 엄마는,
“눈이 자꾸 감기네…”
라고 말하며 고개를 든다.
출판단지를 지나자 바람이 더 세게 불었다. 노랗게 물든 은행잎과 바닥에 수북한 열매들. 사진을 찍기만 해도 예쁠 것 같은 풍경이었지만, 바람이 너무 차다. 걷기보다 실내가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오후 세 시 반. 가까운 롯데몰로 향한다.
엄마는 화장실이 급하시다며 언니들과 사라졌다.
예전엔 이렇게 여자들만 움직이는 일이 없었다. 못 걷는 엄마, 항암 중인 나. 여행은커녕 이 파주까지 온 것도 기적 같은 일이다.
돌솥밥집에 앉았다. 사람 많음에 놀란 엄마는 주변을 천천히 둘러본다. 쇼핑몰도 생소한 듯 계속 주변을 바라보신다. 꼬막돌솥, 불고기돌솥이 테이블에 놓이고, 가족은 조용히 밥을 먹는다. 집에서 먹는 것보다 소박했지만, 그래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니 다행이다.
차로 돌아가는 길. 휠체어에서 차로 옮겨탈 때마다 딸 둘은 몸을 받쳐 올리고 다리를 챙긴다. 그러는 모습을 보며, 2년 전보다 더 약해진 엄마의 몸이 선명히 느껴진다.
높은 건물이 없던 하늘 아래 더 오래 머물고 싶었지만, 바람과 피로가 우리를 서둘러 집으로 부른다. 다시 차가 움직이자 엄마가 말했다.
“여긴 예쁘게 보이네.”
조금 전과 같은 풍경인데, 이번에는 노랑과 빨강이 엄마 눈에도 닿는 모양이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차 안은 다시 조용하다. 또 고개가 천천히 아래로 떨어진다. 나는 다시 엄마의 손을 잡는다.
“왜 자꾸 졸아?”
“눈이 감기네…”
뒷좌석의 언니들은 “잠깐 주무셔”라고 말하지만, 나는 엄마가 자는 모습이 싫다.
계절이 바뀌는 걸 더 느끼셨으면 좋겠어서. 예쁘다, 멋지다, 따뜻하다… 그런 말들을 다시 듣고 싶어서.
아마 내년에는 더 그러실 거다, 라며 마음 속으로 타협해본다. 오늘은 그냥 좀 피곤하신 거라고.
사람의 몸은 결국 조금씩 죽음을 향해 간다.
건강도, 나이도, 아무리 붙잡아도 우리의 손아귀 너머에 있다. 살아 있는 생명이기 때문이다.
정신을 붙잡으려 애쓰는 엄마의 모습 속에서, 그 힘마저 천천히 사라지는 순간을 본다.
슬프지만, 그래서 더 선명하다.
지금 여기, 우리와 함께 있는 이 시간이. 그렇게 오늘의 단풍은 엄마의 눈에 닿고, 그리고 천천히 스며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