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얻는 지혜 / 발타자르 그라시안 / 현대지성
4부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은 가장 위대한 일이다.
관계
150. 자기 가치를 입증하는 방법을 배우라.
자기 것을 제대로 팔 줄 알라. 우리는 흔히 내실만 단단하면 세상이 알아줄 거라 믿는다. 묵묵히 일하고, 책임을 다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면 그만큼의 보상이 돌아오리라 기대한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움직이지 않는다. 사람들은 내용을 꼼꼼히 들여다보기보다는 남들이 선택한 것을 보고 따라간다. 그래서 가치는 그저 쌓는다고 생겨나지 않는다. 스스로 드러내고 설명해야 비로소 존재한다.
나는 아프고 난 뒤에서야 이것을 한층 더 절실하게 깨달았다. 암 치료가 시작되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세상의 중심에 나를 두었다. 아프니까 누군가가 보상해주고, 나의 고통을 나누어줄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아픔은 결코 분배되지 않았다. 가족과 지인이 곁에 있어도 그 누구도 내 통증을 대신 견딜 수 없었다. 결국 고통은 온전히 나의 몫이었다. 그 무게는 오히려 더 개인적이고 깊어졌다.
병원 침대 위에서 하루하루를 버티면서 알게 된 것이 있다. 오래 살아온 시간도, 책임지며 버텼던 노력도, 가족을 위해 흘렸던 눈물도 누구에게도 증거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아팠다고 해서, 열심히 버텼다고 해서, 세상은 내 가치를 알아서 인정해주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조용히 증명하기 위해.
컨디션이 좋은 날은 세상이 아름다워 보인다. 그러나 부작용이 몰려오는 날에는 살아 있는 지옥 속에 갇힌 것처럼 몸과 마음이 무너진다. 두려움과 고통이 겹치면 삶의 무게는 더더욱 내 안으로만 깊게 내려앉는다. 그럴 때마다 글이 나를 붙잡아 준다. 어떤 형태로든 글을 쓰며 마음을 다독이고, 쓰러지지 않도록 나를 지탱한다.
누군가에게 위로를 건네는 일도 결국 같지 않을까. 내가 아픈 누군가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마음뿐인 것처럼, 타인도 나에게 그렇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에게 기대기보다, 나 스스로를 위로하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고 느꼈다. 있는 그대로의 말로, 과장 없이, 숨김 없이 내 삶을 보여주고 싶다.
언젠가 누군가가 이 글을 읽고 “나도 살아볼 수 있겠다”라고 느껴준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아픔 또한 가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지금 천천히 배우고 있는 중이다. 오늘도 내가 살아낸 하루를 세상에 조용히 남긴다. 그것이 내가 나를 증명하는 방식이다.
감동적인 글이 아닐 수 있다. 어떤 상황에 대해 재해석하는 습관이 관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고 있다. 이것만으로도 단단한 마음로 버틸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