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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릴수록 가벼워지는 삶

by 또 다른세상

사람을 얻는 지혜 / 발타자르 그라시안 / 현대지성

4부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은 가장 위대한 일이다.

관계

151. 준비된 사람에게는 위험한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


미리 생각하라. 오늘과 내일,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시간을. 가장 큰 선견지명은 미래를 향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시간에서 나온다. 사람은 평생 올바른 길을 찾아가기 위해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 다시 생각하고, 미리 생각할수록 우리는 앞서 살아가며 자유의지를 더 단단히 갖게 된다.


나는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하는 습관이 있다. 옷, 이불, 책, 전기용품까지 오래된 물건들이 쌓여만 간다. 낡아서 사용하지도 않으면서 보관만 하는 물건들이 집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계절이 바뀌면 옷장 앞에서 고민이 시작된다. 버릴까, 아니면 다시 모셔둘까. 결국 자주 입는 옷은 몇 벌 되지 않는데도 말이다.


얼마 전, 큰아이가 몇 달간의 자취 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와 달리 정리정돈을 좋아하는 아이는 자신의 짐을 넣을 공간이 없다며 창고에 있던 이불을 몽땅 꺼냈다. “이거 다 버려야 할 것 같아.” 아이는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몸이 안 좋은데 나중에 하면 안 될까?”라는 말을 떠올렸지만, 끝내 입 밖으로 내지 못했다. 냉정하게 보니, 집 전체가 정리를 필요로 하고 있었다.


핸드백, 다이어리, 보험증권, 옷들이 계속 거실 바닥 위로 쏟아진다. 일요일에 굳이 이 고생을 하고 싶을까, 잠시 의문이 들기도 한다. 특히 이불은 더 번거롭다. 스티커까지 사 와야 버릴 수 있으니 말이다. 창고에서 나오기만 하고 쌓여가는 물건들을 보니, 그동안 미룬 시간이 그대로 거실에 쌓여 있는 것 같았다.

아이에게는 과감히 버릴 용기가 있다. 나는 언젠가 쓸지도 모른다, 아직 멀쩡하다라는 생각부터 한다. 성향이 다르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이의 판단이 옳았다. 집에 들어오기 전에 내가 먼저 정리해 두었다면 좋았을 텐데, 뒤늦은 후회가 찾아왔다.


어쩌면 아프다는 이유로 모든 일을 뒤로 미루는 버릇이 생긴 건 아닐까. ‘나중에’라는 단어가 머릿속에서 쉬지 않고 맴돈다. 그래도 된다고 스스로를 설득해 왔다. 하지만 정리는 쌓여만 갔고, 결국 누군가가 대신 이해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아픈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게으름이 문제였다.


오늘, 과감하게 버려내는 큰아이에게 한 수 배웠다. 미리 생각한 사람만이 가볍게 살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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