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얻는 지혜 / 발타자르 그라시안 / 현대지성
4부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은 가장 위대한 일이다.
관계
152. 나를 더 빛나게 해주는 사람과 동행하라.
빛을 가리는 사람과는 오래 함께할 수 없다. 내 빛을 가리는 사람을 곁에 두면, 어느 순간 스스로도 흐려진다. 성장하고 싶다면 더 나은 사람들과 연결되어야 하고, 어느 정도 성장했다면 그 빛을 나누며 살아야 한다.
늦가을의 따뜻한 공기, 모자를 쓰면 답답하고 벗으면 서늘한 날이었다. 점심으로 오래간만에 김밥을 먹기로 했다. 늘 가던 김밥집도 있었지만, 포장된 김밥을 주는 방식이 늘 아쉽곤 했다. 신선한 김밥을 먹고 싶다는 마음이 오늘은 발걸음을 다른 곳으로 향하게 했다. 새로 오픈한 김떡당이라는 작은 가게.
문 앞에는 키오스크가, 안에는 혼자 김밥과 라면을 먹는 남자 손님 한 명. 나도 혼자라면 저렇게 먹었겠구나 싶었다. 키가 작고 마른 사장님이 “키오스크에서 결제하시면 돼요”라고 말했다. 현금 결제라고 말했더니 별말 없이 김밥 도마를 꺼냈다. 야채김밥 다섯 줄. 김 위에 밥을 넓게 펴고, 계란·깻잎·부추·햄을 정성스럽게 얹는 손길이 예사롭지 않았다.
그러다 사장님이 나를 쳐다보며 조심스레 묻는다.
“혹시… 절에서 오신 분인가요?”
아니라고 답하자, 머쓱해하며 비슷한 분이 있다고, 미안하다고 했다. 항암치료 중이라 머리카락이 빠졌다고 밝히자, 사장님의 손길이 잠시 멈추었다. 그리고 조용히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저도… 치료 중이에요.”
인천 길병원에서 CT를 찍다가 큰 병원으로 가보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세브란스에서 수술을 받았고, 그것도 뇌 깊숙한 곳에 여러 개의 종양이 있어 싹 다 제거하는 큰 수술이었다. 지금도 치료를 이어가고 있다고 했다.
“집에만 있으니까… 그냥 죽는 날만 기다리는 사람 같더라고요. 그래서 시작했어요. 가족들이 말렸는데, 살아 있는데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어서요.”
그 말이 내 가슴을 봄날처럼 데웠다. 눈앞에서 만들어지는 김밥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었다. 고통, 싸움, 버팀, 그리고 삶을 포기하지 않는 의지가 말없이 서려 있었다. 진심의 양념이 스미고, 존엄한 삶의 힘이 더해진 김밥. 맛이 없을 리가 없다.
아픈 사람은 나 하나가 아니었다. 각자의 자리에서 버티고, 살아 있는 이유를 증명하며, 저마다의 방식으로 다시 일어서고 있었다. 마침내 계산을 마치고 나오며 나는 마음속에 작은 다짐을 새겼다.
이 가게의 단골손님이 되겠다. 그리고 사장님의 의지에서 배우겠다.
무리하지 않고, 스스로 환자라는 사실도 잊지 않으면서, 그러나 살아 있는 사람답게.
오늘 김밥 한 줄이 나에게 말했다.
빛을 내고 싶은가? 나를 더 빛나게 해 주는 사람들과 동행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