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탱이 가족, 그들만의 침묵

그래도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

by 또 다른세상

삼중음성유방암이라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를 받는 와중에도, 나는 중환자인 친정엄마를 돌보고 있다.이 이야기를 주변 사람에게 하면, 이제는 말보다 한숨이 먼저 돌아온다. “미쳤어? 제발 그만해! 미련한 짓 하지 마.” “자기 몸도 못 챙기면서 누굴 간병해? 보호받아야 할 사람이 왜 그래?” 나도 안다. 틀린 말은 하나도 없다는 걸.


그럼에도 엄마를 낯선 병원보다, 익숙한 집에서 모시고 싶었다. “우리 엄마는 고생을 너무 많이 하셨어. 낯선 곳보다, 가족 얼굴을 보면서 계시는 게 조금은 더 행복하실 거야.” 그 말에 돌아오는 반응은 “그럼 너도 고생이 더 필요하다는 거냐”는 핀잔이었다. 하지만 나는 생각을 바꿀 수 없었다.

엄마가 퇴원할 때, 병원에서는 요양병원행을 권했지만, 아무말 못하는 형제들 앞어서 단호하게 집으로 모시고 가겠다고 말했다.그때부터 큰언니가 40일 동안 엄마와 나를 위해 밤낮없이 간병을 해주었다. 어제, 드디어 언니가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었다.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오시기로 되어 있어 언니는 이제 돌아가도 괜찮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떠나는 언니의 표정엔 묘한 흥분이 섞여 있었다. 그 모습이 고맙고도 미안해서 눈물이 났다.

형부의 배려가 없었다면 언니도 그 시간들을 버틸 수 없었을 것이다. 현장근무로 바쁜 와중에도 겨우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지방을 오가던 형부. 나는 그저 감사할 뿐이다. 언니는 암환자인 내 식단까지 매끼 챙겨주고, 엄마의 약과 산소 포화도까지 점검해주었다. 정말 든든한 간호사이자, 조용한 응원자였다.

언니가 떠나는 아침, 내게 짧은 메시지를 보내왔다. “함께 있을 수 있어 감사했어요. 지금까지 힘들었겠지만, 잘 견뎌줘서 고마워. 더 힘내고 건강 잘 챙겨. 우리 가족 앞으로 좋은 시간 많이 보내자. 우리 막내 많이 많이 사랑해.” 그 말을 읽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동안 언니가 내게 얼마나 큰 버팀목이었는지, 그 짧은 문장 안에 다 들어 있었다. 나는, 말로 다 전하지 못했지만 정말 고맙고 또 고맙다.


언니가 짐을 챙기고 현관 앞에 서 있을 때, 형부가 도착했다. 오랜만에 엄마를 마주한 형부는 조용히 다가와 엄마 손을 꼭 잡았다. “우리 큰아들 밥도 제대로 못 먹어서 얼굴이 반쪽이야.”

엄마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하자, 형부는 살짝 웃으며 대답했다. “엄마, 집사람 더 있어도 돼요. 엄마 편한 대로 하세요. 저도 괜찮아요.” 그 말에 엄마는 잠시 말이 없었다. 딸을 걱정하는 마음과 사위를 미안해하는 마음이 섞인 듯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형부는 끝까지 담담했다. 힘들었을 텐데도 늘 여유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그 모습이, 나는 참 존경스러웠다.

언니를 편한 집으로 보내니 마음이 놓이기도 했다. 그동안 허리 디스크를 앓으면서도 단 하루도 힘든 기색을 내보이지 않았던 언니가, 이제는 좀 쉬었으면 좋겠다. 엄마와 언니가 마주 앉아 웃으며 대화 나누던 그 시간이 얼마나 따뜻했는지 모른다.


그 장면을 가슴에 안고 나는 오빠와 함께 항암 치료를 받기 위해 병원으로 향했다. 6개월 중 두 달째. 고통스러운 부작용이 차츰차츰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며칠째 침대에 누워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날들이 반복됐다. 그 와중에도 오빠는 묵묵히 내 옆을 지켜주었다. 나는 혼잣말처럼 떠들다, 울렁거려 잠들기도 했다.

항암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니 오빠가 드디어 입을 열고 한마디 했다. “큰누나한테 전화했는데… 그 집 보일러가 고장 나서 집이 물바다가 됐대.” 순간, 속이 뒤집히는 것 같았다. 형부는 아침 일찍 출근해야 했고, 결국 언니는 지병인 허리 디스크를 안고 물을 퍼냈을 것이다. 말 한마디 없이, 조용히.


그러면서도 언니는 아픈 나와 엄마에게 그런 얘기를 꺼내지도 않았다. 그런 언니에게 형부는 또 “처제 뭐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사먹으라고” 돈까지 보내줬다고 한다. 곰탱이, 곰탱이… 어쩜 이런 곰탱이가 가족일 수 있을까. 화가 나고 속상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엔 결국 미안함뿐이다.


아무것도 모르고 있던 엄마와 나는, 형부에게 큰 죄인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분명 언니는 욱하는 마음에 큰소리도 냈을 것이다. 그러고는 또 미안해하며 혼자 화를 삭였겠지. 그 모습을 상상하니 눈물이 났다.

죽기 전에 꼭, 이 은혜를 갚을 날이 올 것이다. 언니, 형부, 딱 기다려요. 두 배, 아니 세 배로 미안하고 고마운 말 해줄 테니까. 이번 일을 통해, 맏이라는 자리가 얼마나 큰 책임과 희생을 품고 있는지 뼈저리게 알게 됐다. 우리 가족, 곰탱이처럼 말없이 버티는 사람들이지만 그 시간이 길어질수록 사랑도 응원도 커져간다. 그게 바로, 우리 곰탱이 가족의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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