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라는 존재

사실 나도 힘들어

by 또 다른세상

얼마나 더 오랫동안 도움을 주고, 기분을 맞춰줘야 할까. 몸이 아프니, 별별 생각이 다 든다.


아침이면 발바닥이 바닥에 닿기만 해도 통증에 깜짝 놀란다. 식사 준비를 하고, 식후 복용할 약을 꺼낸다. 손에 힘이 없어 그릇을 놓칠 뻔한 게 몇 번이나 된다. 깨질까봐 아찔한 순간들.


가족들은 가끔 내 안부를 묻는다. 하지만 곧 자기 이야기로 넘어간다. 왜 물어보는 걸까. 정말 궁금해서 묻는 걸까.


중증환자 둘이 상부상조하며 살아간다. 고무장갑을 끼고 겨우 쌀을 씻고, 밥을 짓는다. 반찬 몇 가지 꺼내놓고도 뚜껑을 열 힘이 없어 망설인다. 그나마 엄마가 뚜껑을 열어 먹을 수 있게 해준다. 아차 싶은 순간 국그릇을 떨어뜨릴 뻔도 한다. 스스로 놀라기도 한다.

다 차려놓은 밥상 앞, 나는 고개를 떨군다. 엄마는 밤새 호흡기를 끼고 움직이지 않고 잠을 잔다. 아침이면 온몸이 쑤시고 저리다고 한다. 몸을 움직여야 혈액순환이 된다고, 조금만이라도 스트레칭을 하라고 해도 엄마는 쉽사리 말을 듣지 않는다.


‘엄마도 나도 힘들어. 건강할 때처럼 케어해드리지 못하는 걸 이해해주셨으면 해.’ 예쁘게 그렇게 말했어야 했다. 하지만 화가 나 있었다. "눈 감기 전까지 살려고 버텨야 해! 대신 아파줄 사람도 없고, 인상 써도 아무도 모를 테니까, 힘들어도 제발 인상 쓰지 말자"고 말했다.

엄마는 산소마스크를 하고 잠을 자고, 아침이면 산소생성기를 끼고 생활한다. 산소포화도는 90 이상으로 유지되지만, 이산화탄소 배출이 어렵다. 무호흡증도 있다. 좋아지려면 결국은 다이어트뿐이다. 병원 상담 후, 엄마는 자신있게 식이요법을 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86세 노인에게, 그것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엄마는 한 번 결정하면 조율을 모른다. 나는 병원에서 권유하는 다이어트 약을 복용했으면 좋겠지만 말하지 못했다. 모두가 알고 있다. 엄마 몸은 엄마만이 가장 잘 아는 법이다.


어떤 형제는 "드시고 싶은 거 다 드시게 하자"고 한다. 말도 안 된다. 그건 곧 돌아가시라는 말처럼 들린다. "그 나이에 무슨 다이어트냐"는 말도 들린다. 하지만 함께 사는 나는 엄마의 상태가 더 악화될까 두렵다. 죽기 전까지 관리가 필요하다. 사람은, 살아 있는 한 돌봄이 필요하다.


결국, 엄마를 돌봐야 하는 내가 항암 치료로 버티지 못하게 되면 엄마를 요양원으로 모실 수밖에 없다고 벌써부터 형제들은 말하고 싶어한다. 그걸 엄마도, 가족들도 알아줬으면 좋겠다.


아프다는 말도, 이제 형제들은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살만큼 언제까지인지 모르겠지만, 그런말을 가끔한다.


엄마가 스스로 조금 더 움직이고, 좋은 생각을 하고, 더 웃으려 노력해야 한다. 살아있는 한,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


아침을 겨우 끝내고 설거지를 한다. 식탁에 앉은 엄마가 시원하게 코를 푼다. 나는 말한다. "코를 시원하게 풀 수 있어서 부럽네." 나는 세수하다 코피가 터진다. 코 주변은 손도 제대로 대지 못한다. 식사 중 고개만 숙여도 코피가 주르륵 흐른다.

엄마는 말한다. "너는 다리가 성해서 마음대로 걸을 수 있으니 부럽다." 나는 걷기 위해 걷는 게 아니다. 엄마가 내 아픔을 조금이라도 느껴볼 수 있다면, 나 역시 지금 얼마나 힘든지 알아줄까. 엄마는 여전히 나를 건강한 딸로 착각한다.

엄마가 인상을 쓰면, 나는 더 빨리 눈치채고 기분을 맞춰야 한다. 그게 엄마가 원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제, 쉽게 움직이지 못한다. 그래서 엄마는 더 아픈 표정을 짓는다. 엄마가 현실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가족이 있어도, 죽을 때까지 수족처럼 곁에 있을 수는 없다는 것을.지금 엄마 곁에 있는 사람도, 많이 힘들어하고 있다는 걸.


우리는 약속했다. "같이 있는 동안 좋은 기억만 만들자." 아픈 모녀가 아니라, 서로 아껴주고, 곁에 있어줘서 감사한 모녀가 되자고. 그날 저녁, 엄마 방에서 숨소리가 크게 들렸다. 무슨 일인가 걱정하며 살폈다. 엄마는 쉰하나, 쉰둘, 쉰셋 다리 운동을 하고 있었다.

그래요. 같이 살기 위해 안간힘 써봅시다. 그것이 살아 있다는 증거니까. 다른 방에서 나는 발가락을 꼼지락꼼지락 움직인다. 말초신경염이 내 몸을 묶어두려 해도 나는 손과 발을 움직이려 노력할 것이다. 서로를 보며 힘을 내는 모녀는 누구보다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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