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어회 한 접시 주세요

by 또 다른세상


사람을 얻는 지혜 / 발타자르 그라시안 / 현대지성

5부 지혜는 내면의 절제에서 나온다.

내면


170. 모든 힘을 한번에 다 사용하지는 말라


매사에 예비해두라. 그래야 자신의 중요성이 보장된다. 모든 능력을 다 사용하거나, 매번 온 힘을 쏟아서는 안 된다. 지식이 있어도 그것을 아껴두면, 그 완벽함은 배가 된다. 일이 잘못될 때 어려움에서 빠져나오려면 항상 도움을 구할 뭔가가 있어야 한다.

항암 부작용으로 탈모가 왔다. 그 와중에 춥고 떨리는 증상도 같이 온다. 집안에서도 두건을 쓰지 않으면 나만 느끼는 추위에 견딜 수 없다. 잠시 쓰고 있으면 답답함이 밀려오기도 한다. 벗었다, 썼다를 반복하는 모습을 가족들은 매번 본다.


어느 날인가, 아들이 "광어회 한 접시 주세요"라고 말을 해서 무슨 말인가 잠시 생각하고 다른 일을 집중한 적이 있었다.


늦게 일어나는 아들이 밥을 먹으려고 할 때마다 전기밥솥에 밥이 없었다. 혼자 국수 요리를 잘 만들어 먹어 신경을 쓰지 않았다. 아픈 엄마를 조금 이해하겠지, 나 혼자 효자 아들이야 라고 속 편하게 생각한다. "내가 밥 좀 먹으려면 매번 밥이 없네"라고 말한다. 다른 일에 집중하며 못 듣는 척한다.


가까이 와서 이야기를 하면 마지못해 "넌 음식 맛있게 잘 만들어 먹어서"라고 말한 적이 한두 번 있다.


주방으로 가서 뭔가를 열심히 볶고, 삶고, 냉장고를 열었다 닫았다, 파와 양파를 찾아 씻고 결국 후라이팬에 볶음 국수를 해낸다. 주방에는 그릇이 한가득이다. 본인이 어질러놓은 것들 모두 깨끗이 정리하고 식사를 끝내겠지 라고 효자 아들이라고 생각한다.


"설거지는 하는 거지?"라고 말을 하면 아들은 멋있게 웃는다.


"엄마, 아프다고 운동 안 하면 더 힘들어져요. 엄마를 위해서 설거지 남겨놓는 거예요"라며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따라 들어가 한소리 하려다가 그만둔다.


밥 차려 달라고 바라지 않고, 스스로 만들어서 먹는 것도 기특한 거다. 웃음을 잃을까 봐 회 뜨는 횟집 사장님이라고 농담을 하는 모습도 얄밉기도 귀엽기도 하다. 일상에서 나의 힘을 반 정도 사용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가족이 있어 고맙고, 든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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