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김장을 마치고 지인이 건넨 무 다섯 개가 베란다에 머문 지 며칠이 지났다. 눈에 보일 때마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지?” 하는 마음이 불편하게 스친다. 당장은 반찬도 넉넉하고, 무로 무엇을 만들어 먹을 생각도 없었지만, 누군가 정성 들여 키워 우리 집까지 온 것들을 그냥 묵혀둘 수는 없었다.
새벽 네 시.
잠이 오지 않아 깨어난 엄마는 오늘도 성경책을 작은 소리로 읽고 계신다.
문득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무 크게 썰어서 깍두기나 담가볼까?”
그러자 엄마는 아무렇지 않게, 오래전의 엄마 목소리로 대답하셨다.
“그깟 게 뭐 어렵다고. 하면 되지.”
아흔 살을 향해 가면서도 깍두기 한 그릇은 ‘일도 아니다’라고 말하는 엄마의 자신감에 잠시 말문이 막혔다.
나는 무를 다섯 개 씻어 식탁에 올려놓고 도마와 칼을 건넸다.
엄마는 냉장고에 있는 파, 양파, 마늘, 생강까지 챙겨오라 하신다.
없는 양념을 따로 살 필요 없이 있는 것들로 담그자며.
몇 분 지나지 않아 엄마는 커다란 무 덩어리들을 능숙하게 썰어 큰 볼에 담아두셨다.
그러더니 곧바로 양념을 가져오라 하신다.
생강을 넣었었나? 잠시 고민했지만, 엄마에게는 당연한 순서였다.
소금, 새우젓, 고춧가루, 액젓, 매실청, 설탕, 파, 양파, 마늘, 생강…
그리고 매운 고춧가루를 아주 조금.
엄마의 손이 지나가는 곳마다 오래된 비법이 고스란히 스며들었다.
나는 엄마가 시키는 대로 무와 양념을 섞었다.
그릇 안에서 금세 붉은 빛이 살아나고, 깍두기 특유의 겨울 냄새가 피어올랐다.
“엄마, 이거 넘칠 것 같은데…?”
김치통에 옮겨 담으며 걱정하자,
엄마는 고개도 들지 않은 채 말했다.
“그냥 담어. 김치는 알아서 줄어들어.”
뚜껑이 제대로 닫히지 않은 김치통을 보면서도
이상하게 마음은 든든했다.
그날 아침, 엄마의 얼굴은 오랜만에 생기가 돌았다.
가족을 위해 김치를 담갔다는 뿌듯함이 눈빛에서 은은하게 비쳤다.
예전처럼 부엌을 주름잡던 엄마의 위엄이 다시 깨어난 것만 같았다.
“양념 그릇 좀 헹궈. 거 묻은 거 버리기 아깝다.”
“기본 양념은 늘 준비해 놔야지. 누가 와도 바로 해먹을 수 있게.”
엄마는 잔소리인지, 가르침인지 모를 말들을 한참 이어가셨다.
그 모든 소리가 오래된 추억의 향처럼 따뜻했다.
깍두기 한 번 담갔을 뿐인데
엄마의 시간, 엄마의 마음, 엄마의 손맛이
다시 우리 집에 돌아온 느낌이었다.
베란다 한켠, 김치통이 조용히 익어가고 있다.
그 속에는 겨울의 맛뿐 아니라
엄마가 마지막까지 내게 건네고 싶은 마음도 함께 담겨 있는 듯하다.
얼마나 더 이런 시간을 누릴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오늘의 깍두기는 우리에게 또 하나의 추억을 만들어 주었다.
그날 오후,
요양사님과 함께 꽁꽁 싸매고 다녀온 엄마의 손에는
양파 세 개, 파 한 단, 그리고 생강 몇 개가 들려 있었다.
휠체어에 앉아서도 직접 골라온 재료들.
엄마는 이미 다음 요리를 준비하고 계셨다.
다음엔 엄마와 무엇을 만들어볼까.
이 겨울, 엄마와 함께할 작은 일들이
내 삶을 다시 따뜻하게 데워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