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마다 엄마의 신음 소리가 집 안을 채운다.
“아이고, 온몸이 다 아프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부터 하루는 이미 기울어 있다.
속이 자주 더부룩해진 요즘, 아침을 어떻게 넘길지가 늘 고민이다. 김치만두국을 끓였다. 닭발국물에 소금을 조금 넣고 떡과 만두를 넣어 팔팔 끓였다. 계속 춥다고 말하는 엄마에게 이 국물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랐다. 식탁 앞에 만두 두 개와 국물을 넉넉히 담아 내려놓자마자 엄마는 말했다.
“안 먹어.”
순간, 가슴 안쪽이 막혔다.
계속되는 앓는 소리가 듣기 싫어졌다.
“엄마, 밥 먹을 때만이라도 그런 소리 좀 안 하면 안 돼?”
말은 이미 입 밖으로 나와 있었다.
엄마의 얼굴이 굳었다.
“그럼 밥을 따로 먹어.”
그날 아침, 나는 엄마보다 먼저 상처를 입었다고 느꼈지만, 곧 알았다. 상처를 준 쪽은 나였다는 걸.
며칠 동안 운동도 쉬고 집안일만 반복하니 몸이 둔해졌다. 나가는 나를 보며 엄마는 두부와 보리차를 사 오라고 했다. 오늘은 시장에 나갈 기운이 없는 모양이었다. 요가를 마치고 점심 전에 서둘러 집에 도착했을 때, 엄마는 요양사님과 화투를 치며 웃고 있었다.
“점심 드셔야 하지 않아요?”
“벌써 먹었어.”
하루 종일 속이 답답했다.
몸이 아니라 마음이 먼저 지쳐 있었다.
요가원에서 명상을 하며 숨을 고른다. 천천히 들이마시고, 길게 내쉰다. 일주일 동안 이어진 엄마의 아프다는 말, 짜증 섞인 목소리,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받아내야 했던 나의 얼굴들이 떠오른다. 상처받았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나는 점점 우울해지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엄마가 미워졌다.
꼭 그런 표정으로 밥을 먹고, 나만 눈에 보이면 이것 해달라, 저것 해달라. 해도 소용이 없다. 더 아프다고 한다. 이렇게 사는 게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다. 말이 점점 거칠어졌다. 밥 먹을 때 앓는 소리 좀 그만하라고 말한 나 자신이 너무 싫어졌다.
힘들어서 그랬다.
나도 힘들다고, 그렇게 상처를 주는 말을 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는 말이 떠올랐다. 왜 힘들 때일수록 더 잘 모셔야 하는데, 나는 그러지 못했을까. 며칠 동안의 나를 돌아보며 생각했다. 지금 나는 분명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 집에 돌아가면 따뜻하게 대해 드려야겠다고 다짐했다. 다짐은 늘 조용히, 늦게 온다.
가장 두려운 생각은 이것이었다.
엄마의 마음도 몰라주면서, 나는 무슨 글을 쓰고 있는 걸까. 그동안의 다정함은 편안한 가식이었을까. 제발, 엄마가 스스로 몸을 조금만 더 움직여 주었으면 좋겠다. 변비인데도 더 안 드시고, 안 움직인다. 속이 터진다. 아프다고만 한다.
이게 늙어가는 과정일까.
그렇게 생각해 보지만, 마음은 쉽게 납득하지 못한다.
그래도 나를 버티게 한 생각이 있다.
남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누구나 한다.
나는 남들이 쉽게 하지 못하는 일을, 엄마에게 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암이 나를 바꾸었다고 생각했지만, 오늘은 그 믿음이 흔들렸다. 암에 걸려도 자식 된 도리는 변함없이 해낼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다른 형제들과는 다를 거라고, 나는 끝까지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항암 부작용과 깊어가는 엄마의 늙어감이 동시에 밀려오자, 그 무게가 버거웠다.
그래도 결국은 이것도 받아들여야 한다.
이것이 곧 삶이니까.
잃은 것도, 얻은 것도 없다고 적어본다. 사실은 잃고 얻음을 따질 여유조차 없는 하루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엄마의 신음 소리는 나를 지탱해 주는 힘이기도 하다. 그 소리가 있다는 건, 아직 엄마가 곁에 있다는 뜻이니까. 힘들 때도 있지만, 엄마는 여전히 나에게 가장 큰 정신적 위로가 되는 존재다.
사소한 감정에 감정을 소모하지 말자고 마음속으로 되뇌어 본다. 잘 되지 않더라도, 그렇게 살아보자고.
당신을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당신을 위로하는 사람도 있다.
오늘, 나는 엄마를 가장 미워한 날에
가장 솔직한 나를 보았다.
그리고 그 사실 앞에서
조금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