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을 키운 것은 병이 아니었다

by 또 다른세상


사람을 얻는 지혜 / 발타자르 그라시안 / 현대지성

5부 지혜는 내면의 절제에서 나온다.


내면


176. 자신의 무지함을 모르는 자들은 고쳐주는 약은 없다.


직접 지식을 얻거나, 지식을 가진 사람의 말을 들어라. 자기 지식이든 남의 지식이든 지식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다. 그러나 다수가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모르고,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기 자신은 안다고 착각한다.


내실 없이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은 불행이다. 이 말은 권력이나 명예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건강 앞에서도 마찬가지다. 몸은 정직한데, 생각이 따라주지 않으면 결국 그 대가는 고스란히 자신에게 돌아온다.


우리는 직접 지식을 얻거나, 지식을 가진 사람의 말을 들어야 한다. 자기 지식이든 타인의 지식이든, 지식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문제는 많은 사람이 ‘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살아간다는 점이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기 자신만큼은 알고 있다고 믿는 착각. 그 착각은 때로 병을 키운다.


최근 동네 병원에서 받은 피검사 결과를 계기로, 가족은 여러 대학병원을 오가고 있다. 폐센터, 심혈관센터, 신장센터, 호흡기센터, 피부과까지. 한 과를 진료받기 위해서도 기본적으로 세 번 이상 병원을 방문해야 한다. 첫 진료, 검사, 그리고 결과에 따른 처방. 이 반복되는 과정은 단순한 행정 절차가 아니라, 몸이 보내는 경고의 기록이다.


가장 먼저 찾은 곳은 호흡기센터였다. 체내 이산화탄소가 제대로 배출되지 않아 호흡 곤란이 발생했고, 응급실과 중환자실을 거쳐 입원 치료까지 받았다. 원인은 비만이었다. 그러나 진단은 곧바로 거부로 돌아왔다. 비만 치료는 절대 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선언이었다.


심혈관센터에서는 빈혈 증상이 발견됐다. 체내 출혈 가능성이 의심되었고, 원인은 오랜 기간 복용해 온 진통제의 과다 사용이었다. 지난 20여 년 동안, 동네 병원에 갈 때마다 아픔을 호소했고 약은 점점 늘어났다. 약을 먹으면 마음이 편해졌고, 그 편안함 속에서 문제는 누적되었다.


주기적인 검사 수치가 악화되자, 결국 동네 병원 원장은 대학병원을 권했다. 그리고 이제야 드러난 사실이 있다. 병을 키운 것은 병 자체가 아니라, ‘편안하게 낫고 싶다’는 마음과 지식 없는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병원은 동네 병원이든 대학병원이든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환자가 자신의 몸을 어떻게 바라보느냐다. 그러나 부정적인 생각이 들면 아예 마음을 닫아버리는 태도는, 치료 이전에 삶을 멈추게 한다. 상황이 여기까지 왔음에도 변화가 없다면, 그것은 단순한 고집이 아니라 위험 신호다.


자기결정권은 존중받아야 한다. 하지만 그 결정이 반복적으로 몸을 망가뜨린다면, 가족에게는 돌봄이라는 또 다른 부담이 전가된다. 실제로 비만은 더 악화되었고, 신체 활동은 줄어들었으며, 가족의 도움이 필요한 시간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어쩌면 오랫동안 쌓여온 비만 치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스스로를 묶고 있는지도 모른다. 치료는 처벌이 아니라 선택이다. 살기 위한 선택이며, 함께 오래 살기 위한 최소한의 도전이다.


건강은 용기의 문제일 때가 많다. 두려움을 인정하되, 그 두려움에 머물지 않는 용기. 내일을 조금이라도 더 살기 위해 오늘의 생각을 바꾸는 용기 말이다.


이 변화는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결국 자기 자신을 위해 필요하다. 몸은 이미 충분히 많은 신호를 보내고 있다. 이제는 그 신호에 귀 기울일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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