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얻는 지혜 / 발타자르 그라시안 / 현대지성
5부 지혜는 내면의 절제에서 나온다.
내면
184. 어리석은 사람은 자기 명예를 우상처럼 숭배한다.
너무 격식을 차리는 사람이 되지 말라. 그 명예가 보잘것없는 것들 위에 세워져 있음을 드러낼 뿐이다. 너무 격식을 차리지 않으려면 스스로 훌륭한 역량을 지녀야 한다.
이번 항암제는 나를 유난히 또렷하게 만든다.
잠은 오지 않고 정신은 말똥말똥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게 느껴진다. 가족의 말 한마디, 표정 하나에도 쉽게 흔들린다. 그 순간에는 참지 못하고 반응하고, 조금 시간이 지나면 꼭 같은 생각을 한다. 내가 왜 그랬을까.
새벽 한 시가 넘었는데도 잠들지 못한 채 누워 있다. 무언가에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생각은 자꾸 겉을 맴돈다. 그때 옆방에서 엄마의 “아이고, 아이고” 소리가 들린다. 다리 통증 때문에 잠을 설치다 결국 침대에 앉아 계신다.
“어디가 아픈지 말을 해야 약을 드리지.”
입으로는 그렇게 말하지만, 며칠 전부터 그 신음이 습관처럼 느껴져 마음이 복잡해진다. 듣는 나 역시 지쳐 있기 때문이다.
어제 아침에는 무릎에 파스를 붙여드렸고, 콧물이 난다고 해서 약을 드렸고, 저녁에는 허리에 파스를 붙여드렸다. 식사할 때도, TV를 볼 때도, 가만히 앉아 계실 때도 ‘아이고, 아이고’는 멈추지 않는다. 주무실 때와 화투를 치실 때만 그 소리가 사라진다.
내 몸 상태가 괜찮을 때는 그 소리가 크게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항암을 맞고 돌아온 날에는 다르다. 내 몸이 무너지니, 엄마의 신음이 걱정이 아니라 부담으로 다가온다. 그 사실이 또 나를 괴롭게 한다.
지금 엄마는 돋보기를 쓰고 성경책을 읽고 계신다. 통증을 잠시 잊는 하루 중 한 시간. 성경 읽는 소리를 들으면 이상하게 마음이 가라앉는다. 무슨 내용인지 들으려 해도 잘 이해되지는 않는다. 그래도 상관없다. 엄마의 목소리 그 자체가 나에게는 작은 위로가 된다.
며칠 전에는 교회 새내기 등록을 위해 구역장을 만났다. 함께 교회에 가자고 했던 요양사님의 이름은 전도자로 적히지 않았다. 대신 처음 만난 구역장의 이름을 적어 제출하자 담당자가 다시 묻는다. 정확하냐고. 구역장은 내가 같이 왔으니 당연히 자신이라며 말했다. 그 장면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이게 그렇게 중요한 일일까.
나를 소개하며 ‘작가님’이라는 말이 나왔다. 구역장은 자신도 글을 쓰고 책을 냈다고 했다. 소설이냐, 에세이냐고 묻는다. 나는 작가라 부르기엔 아직 부족하다고 답했다. 그 말이 겸손이어서가 아니라, 지금 내 삶과는 어울리지 않는 호칭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곧이어 목사님과 함께 집에 와서 기도를 해주겠다는 말이 나왔다. 아픈 사람만 있는 집이라서라는 설명이 덧붙었다. 그 말이 불편했다. 나는 위로가 필요했지, 분류되고 싶지는 않았다.
다음 주에는 새내기 교육장으로 오라고 했다. 목사님과 사진도 찍어야 한단다. 요양사님에게는 전화번호를 알려주라고 했다. 그렇게 헤어지고 나서 구역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다시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았다.
정해진 조직의 격식은 누구에게나 같은 의미일 수 없다.
지금의 나에게는, 잘 알아듣지 못하면서도 성경을 읽는 엄마의 목소리가 그 어떤 격식보다 편안하다.
나는 그 소리로, 오늘 밤을 견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