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모신다는 말 앞에서

by 또 다른세상

사람을 얻는 지혜 / 발타자르 그라시안 / 현대지성

6부 이 세상은 천국과 지옥의 중간에 있다.


평정심


195. 지식을 올바로 활용할 줄 아는 지혜를 갖춰라


평가할 줄 알라. 모든 사람은 어떤 일에서든 남들의 스승이 될 수 있다. 뛰어난 사람을 능가하는 또 다른 사람이 늘 있기 때문이다. 유용한 지식이 있으면 각각을 활용할 줄 안다. 어리석은 자는 모든 사람을 경시하는데, 좋은 것을 알아보지 못하고 나쁜 것만 선택하기 때문이다.


주사 다이어트를 시작한 지 3주가 되었다.

처음 주사를 맞기로 결심했을 때, 엄마는 쉽지 않은 선택을 했다. 숨쉬기조차 버거워진 몸으로, 점점 걷는 일도 힘들어지면서도 요양원만은 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이 살고 싶다는 의지처럼 들렸다. 그래서 함께 시작했다.


하지만 주변에서는 은근히, 혹은 노골적으로 반대했다.

“그 나이에 무슨 다이어트야.”

“괜히 더 힘들어질 뿐이야.”


그 말들이 엄마의 마음을 조금씩 흔들고 있다는 걸 나는 느꼈다. 그리고 오늘, 세 번째 주사를 놓아드린 뒤 엄마는 조용히 말했다.


“타온 약만 주사 맞고, 그만 둬야겠어.”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턱 막혔다.


처음 한 달이 가장 힘들다는 이야기를 나는 알고 있었다. 지금이 가장 고비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버텨보자고, 조금만 지나면 숨이 덜 가빠질 거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대신 실망이 먼저 차올랐다.

이렇게 의지가 약한 사람이었나.

나는 엄마를 그렇게 생각한 적이 없었다.


부작용이 힘든 건 안다. 속이 울렁거리고, 몸이 처지고, 아무것도 하기 싫어지는 그 느낌이 얼마나 괴로운지도 안다. 하지만 이대로 지내다가는 응급실과 중환자실을 오가는 시간이 더 잦아질 게 분명하다. 살은 계속 불어나고, 움직임은 더 줄어들고, 결국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은 더 커질 것이다.


그런데도 가족들은 말한다.

“힘들다잖아, 그만해.”

그 말이 정말 엄마를 위한 말인지, 아니면 책임에서 한 발 물러나고 싶은 마음인지 나는 구분할 수가 없다. 요양원은 싫다면서, 그렇다면 어떤 대책이 있는 걸까. 나와 엄마를 제외한 가족들은 정말 그 이후를 생각하고 있는 걸까.


나는 점점 혼자가 된다.

엄마의 고통을 이해하려는 사람도, 내 하루를 버티게 하는 사람도 없는 자리에서 혼자 결정하고, 혼자 감당한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스친다.


그냥 이렇게 살이 찔 대로 찌고, 응급실로 실려 가고, 중환자실로 가는 게 모두에게 더 편한 선택인 건 아닐까 하고.


이 생각이 들었을 때, 나는 스스로에게 놀랐다.

엄마를 포기하려는 마음이 아니라, 나 자신이 무너지고 있다는 신호였기 때문이다.

엄마가 조금이라도 가볍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


숨 쉬는 일이 덜 힘들고, 침대에서 혼자 일어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그 마음을 이제는 내가 내려놓아야 하는 걸까.

“끝까지 모시겠다”는 말이 어느 순간부터 나를 옭아매는 말이 되었다.


사랑으로 시작한 돌봄이, 책임으로, 의무로, 그리고 두려움으로 변해갔다. 이제는 솔직히 자신이 없다. 끝까지 갈 수 있을지, 아니면 그 전에 내가 먼저 무너질지.


이 글을 쓰며 깨닫는다.


이건 엄마에 대한 실망의 기록이 아니라, 나 자신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고백이라는 것을.

누군가는 “그래도 네 엄마잖아”라고 말하겠지만, 그 말 뒤에 따라오는 무게를 실제로 들어본 사람만이 이 마음을 안다.


오늘 나는 답을 내리지 못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이 절망은 냉정해서가 아니라, 너무 오래 사랑해왔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이 글은 엄마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지금의 나에게 건네는 마지막 구조 신호인지도 모르겠다.


이제 나는 묻는다. 끝까지 모시는 것이 과연 어디까지를 의미하는지.

모든 선택의 결과까지 내가 떠안는 것이 사랑인지, 아니면 그저 나를 소진시키는 집착인지. 지혜란 끝까지 버티는 힘이 아니라, 책임의 경계를 아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엄마의 선택을 존중하되, 그 선택의 모든 무게를 나 혼자 짊어지지 않는 것. 옳은 답을 찾으려 애쓰기보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선택을 하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엄마를 지키기 위해 나 자신을 무너뜨리지 않겠다고 마음속으로 선언하는 것. 어쩌면 지금 나에게 필요한 지혜는, 포기하지 않는 용기가 아니라 나도 함께 살아남기 위해 한 발 물러설 줄 아는 용기인지도 모르겠다.


이제 나는 묻는다. 끝까지 모시는 것이 과연 어디까지를 의미하는지.

모든 선택의 결과까지 내가 떠안는 것이 사랑인지, 아니면 그저 나를 소진시키는 집착인지. 지혜란 끝까지 버티는 힘이 아니라, 책임의 경계를 아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엄마의 선택을 존중하되, 그 선택의 모든 무게를 나 혼자 짊어지지 않는 것. 옳은 답을 찾으려 애쓰기보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선택을 하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엄마를 지키기 위해 나 자신을 무너뜨리지 않겠다고 마음속으로 선언하는 것. 어쩌면 지금 나에게 필요한 지혜는, 포기하지 않는 용기가 아니라 나도 함께 살아남기 위해 한 발 물러설 줄 아는 용기인지도 모르겠다.


울고 싶다. 이게 엄마를 위한 일이 아니라고, 그냥 되는 대로 살아가지 말자고 간곡히 다시 말하고 싶다.

그 부작용이 싫다면 또 다른 통증이 엄마를 뒤덮을 것을 왜 알지 못할까?

아 나만 이런생각을 하는것이 잘 못된 생각이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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