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얻는 지혜 / 발타자르 그라시안 / 현대지성
6부 이 세상은 천국과 지옥의 중간에 있다.
평정심
196. 믿고 의지할 나만의 별을 찾으라
자기 별을 알라. 자기 별이 없을 정도로 의지할 곳 없는 사람은 없다. 만일 불행다다면 그것은 자기 별을 모르기 때문이다. 별을 따르고, 그것을 도와줄 수 있어야 한다. 단, 그것들을 바꾸려고 하지는 말라. 그렇게 하면 작은곰자리라고 불리는 북극성을 놓치게 되기 때문이다.
그날도 여느 직장인처럼 퇴근 시간에 맞춰 집으로 돌아왔다. 여섯 시가 조금 지난 시각,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거실에 앉아 있던 엄마의 시선이 먼저 나를 붙잡았다.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오늘은 일찍 온다고 해서 무슨 일 난 줄 알았어.”
나는 웃으며 말했다.
“생각보다 빨리 끝난 건 아니고요. 끝나고 조금 쉬엄쉬엄 오다 보니 이 시간이네.”
피곤했지만, 엄마의 걱정을 먼저 불러온 것 같아 마음 한편이 괜히 미안해졌다.
서둘러 저녁 준비를 하려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제일 먼저 할 일은 늘 그렇듯 보리차를 끓이는 것이었다. 가스레인지 위에 놓인 냄비의 뚜껑을 열어보는 순간, 익숙하지 않은 냄새가 훅 올라왔다. 닭도리탕이었다.
“엄마, 누가 보양식 만들어 놓은 거야?”
엄마는 요양사 선생님이 다녀가며 놓고 갔다고 했다. 항암 치료를 받으러 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일부러 몸 챙기라며 준비해 주셨다는 말에 가슴이 뜨거워졌다. 감사하다는 마음을 전하려고 바로 문자를 보냈다.
냄비 속에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누군가의 진심이 가득 담겨 있었다. 대추와 단호박, 감자와 마늘, 닭과 닭발까지. 달큰한 향 사이로 ‘힘내라’는 마음이 느껴졌다. 그 냄비 하나가 그날 하루를 버티게 해주는 별처럼 느껴졌다.
식사를 하면서 엄마는 낮에 있었던 놀이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놀이터 한쪽에서 청소를 하던 할아버지가 칼을 들고 있었다고 했다. 알고 보니 그 칼은 야채를 손질하려고 한 할머니가 가져왔다가 떨어뜨린 것이었다. 그 사실을 모른 채, 할아버지는 놀고 있던 아이에게 혹시 칼을 떨어뜨리지 않았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아이는 고개를 저으며 아니라고 답했고, 할아버지는 필요하면 가져가라며 칼을 내밀었다. 아이는 다시 고개를 세차게 가로저으며 자리를 피했다.
그 순간의 장면을 상상하니, 오해가 생길 법도 했다. 놀이터에는 엄마와 요양사, 청소하는 할아버지, 아이, 그리고 개를 산책시키던 할머니가 있었다. 칼을 든 할아버지라는 모습만 보면 충분히 오해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아이는 개를 산책시키던 할머니에게 다가가 할아버지가 무서웠다고 말했다고 한다. 할머니는 아이에게 그 할아버지는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차분히 설명해 주었고, 아이는 그제야 조금 안심했다고 했다.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요양사 선생님에게 친정엄마냐고 물었고, 그렇다고 하자 요즘 부모를 모시는 일이 얼마나 쉽지 않은데 대단하다고 칭찬을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그래도 결국엔 요양원 가는 게 순서지”라는 말을 덧붙였다고 했다. 요양사 선생님은 계속 건강하게 모실 거라고 답했고, 할아버지는 훌륭한 자식이라고 다시 한 번 칭찬했다.
그는 자신이 아흔 살이라고 소개하며, 엄마에게 건강 잘 챙겨서 자식들 곁에서 오래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 말을 전하는 엄마의 얼굴에는 내내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중, 암 친구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의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방으로 들어가 전화를 받았다. 통화 내용은 뜻밖에도 김밥 이야기였다. 집에서 만들어 먹는 김밥 재료와 조합을 하나하나 설명해 주었다. 사과, 토마토, 키위, 계란, 콜라비까지 넣으면 상큼하다고 했다. 과일 김밥은 처음 들어보는 조합이라 신기했고, 꼭 한번 도전해 보겠다고 말했다.
변비가 심하다는 내 말에, 다음에 만나면 자기가 먹어보고 효과 봤던 약을 몇 개 나눠주겠다고도 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배려에, 나는 괜히 목이 메어 고맙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 서로의 아픔을 잘 알기에, 이렇게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들. 그들이 바로 나의 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힘이 들 때 곁에 있어주는 사람, 지칠 때마다 말을 건네주는 사람. 때로는 부담스럽고, 때로는 마음이 닳기도 하지만, 결국 그 사람들이 있어 나는 완전히 무너지지 않는다. 그들이 나의 별이라면, 나 역시 그 별들이 계속 빛날 수 있도록 관계를 이어가고 싶다.
엄마에게 말했다. 딸을 기다리며 걱정하는 것보다, 스스로 건강할 수 있는 생각과 행동을 하는 것이 나를 위하는 일이라고. 그러자 엄마는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너도 엄마가 어디 가서 늦게 오면 걱정 안 되겠니?”
그 말 앞에서 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아마도 우리는 서로의 별일 것이다.
서로를 걱정하며, 때로는 과하게 붙잡고, 그러면서도 결국 놓지 못하는 존재.
오늘도 나는 내 별을 올려다본다. 이미 충분히 빛나고 있다는 것을, 이제는 조금씩 알아가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