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얻는 지혜 / 발타자르 그라시안 / 현대지성
6부 이 세상은 천국과 지옥의 중간에 있다.
평정심
205. 원하는 걸 얻는 진정한 비결은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이다.
대수롭지 않게 여길 줄 알라. 원하는 걸 얻는 진정한 비결은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이다. 보통 원하는 걸 애써 구할 때는 얻지 못하다가, 더는 신경을 쓰지 않을 때 손에 들어온다. 잊어버리는 것만 한 복수가 없다. 중상을 잠재우는 방법은 거기에 신경 쓰지 않는 것이다.
한동안 밥 한 끼를 챙기는 일에 큰 의미가 부여되었다. 제대로 차려 먹이고, 제대로 먹는 일이 마치 특별한 사명처럼 느껴졌다. 아침이면 밥을 차려 드리고 집을 나서 운동을 한다. 점심때가 되면 다시 집으로 돌아와 친정엄마와 요양사님의 식사를 준비한다. 찌개를 끓이고 밥을 짓고 식탁을 차린 뒤 설거지까지 마치면 요양사님의 퇴근 시간이 된다. 그제야 혼자 남은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려 하면, 약 기운에 취해 이미 잠들어 계신다. 잠시 TV를 보거나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고 나면 다시 저녁 준비를 할 시간이 된다. 그렇게 반복되는 하루가 남긴 것은 ‘가족의 끼니를 챙기고 있다’라는 생각이다.
그러다 일상의 패턴에 조금씩 변화가 생겼다. 운동을 마친 뒤 한 시간 정도 요가를 하고, 이어 산책길에 나선다. 동네 버스길을 지나 공원으로 향한다. 꽁꽁 싸매고 조심조심 걷는 어르신들을 자주 마주친다. 그들의 목적지도 같다. 공원 입구에는 노년의 사람들이 담배를 피우거나 과자와 소주잔을 부딪치며 이야기를 나눈다. 워킹 코스에는 추위에도 반바지를 입고 달리는 사람이 있다. 등에 땀이 차 김이 모락모락 오른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걷다가는 넘어질 것 같아 두꺼운 장갑을 끼고 천천히 발을 옮긴다.
한 시간쯤 걷고 나면 모자 속 머리에서 땀이 난다. 민머리라 벗기도 애매해 늘 참고 만다. 잠시 의자에 몸을 기대고 있으면 어느새 다시 추워진다. 공원 호수는 꽝꽝 얼어 있고, 갈대마저 얼음에 수갑을 찬 듯 꼼짝하지 않는다. 그 위로 나뭇가지를 입에 문 까치가 날아간다. 시선을 떼지 못한 채 그 까치를 따라간다. 큰 나무에 내려앉아 몇 번에 걸쳐 가지 위로 올라간다. 입에 문 것을 놓치면 어쩌나, 괜한 걱정이 앞선다. 분명 엄마 새일 것이다. 이런 추위에 집을 짓느라 고생이 많겠다. 생각해보면 여름에는 오히려 하기 힘든 일일지도 모른다. 초록빛 나뭇가지를 물고 날아다니는 일은 더 어려웠을 테니까. 그렇게 자연을 바라보며 걷다 보면, 하늘 위로 바쁘게 오가는 비행기가 눈에 들어온다. 그 안에는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타고 있을까.
혼자 사색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어느 날 엄마는 “왜 요즘은 같이 점심 먹으러 안 오니?”라고 묻는다. 요양사님이 계셔도, 와서 밥을 차리고 자신을 살피고 간식까지 챙겨주길 바라신다. 딸이 곁에 있어야 비로소 안심이 되는 모양이다. 컨디션이 좋을 때는 걷기라도 해야 한다는 걸 분명히 알면서도 그런 말을 꺼내신다. 집에 있으면 편안하지만, 생각은 점점 좁아진다. 엄마의 일상에 계속 맞추다 보니 서운함이 쌓여간다. 지금은 거리두기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함께할 때는 서로에게 집중하고, 떨어져 있을 때는 각자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
신체적인 의지를 넘어, 정신적인 의지를 발휘하고 싶은 엄마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된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 살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연로해져 가는 만큼, 서로 각자의 중심을 잡아야 한다. 날이 갈수록 엄마의 앓는 소리는 커지고 길어진다. 가진 에너지를 모두 쏟아도 기대만큼의 행복은 오지 않는다. 각자가 감당해야 할 몫이 있다. 그 지점을 찾고 있다.
가끔 엄마의 눈빛이 그대로 향할 때가 있다. ‘나 좀 도와줘’라고 말하는 듯한 시선. 혹시 잘못되면 어쩌지 하는 생각에, 몇 번의 고비마다 모든 것을 붙잡고 놓지 못했던 시간들이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애써도 인간에게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이제는 더 정확히 받아들여야 했다.
보통 원하는 것을 애써 구할 때는 얻지 못하다가, 더는 신경 쓰지 않을 때 손에 들어온다는 말은 가족에게 지나치게 집착할수록 긍정적인 결과보다 부정적인 결과를 낳는다는 뜻과 닮아 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그대로 두고, 기다려주는 것. 무조건 다 해주는 것이 정답이라는 생각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