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헤매다, 하루를 건너다

by 또 다른세상

사람을 얻는 지혜 / 발타자르 그라시안 / 현대지성

6부 이 세상은 천국과 지옥의 중간에 있다.

평정심

207. 한순간의 쾌락이 평생의 수치가 될 수 있다.

참을 줄 알라. 우연히 일어나는 일들은 빈틈없이 경계해야 한다. 정념의 충동은 신중함을 미끄러지게 하고, 그럴 때 자제심을 잃을 위험에 처한다. 오랜 시간 평정을 지켜왔어도 한순간의 분노나 쾌락으로 일을 망칠 수 있다. 그리고 때로는 한순간의 쾌락이 평생의 수치가 될 수도 있다.


OO대학교를 찾았다.

졸업증명서와 성적증명서 원본이 필요했다. 내일 병원 일정이 있어, 미리 자격증 신청서를 제출하기 위해 준비해야 할 서류 중 하나였다. 인터넷으로 위치를 확인하고 사무실을 찾아갔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입구에 있던 관계자에게 물었다. 온화하지 않은 표정으로 “입학처에 문의하세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입학처가 어디냐고 다시 묻자 “앞쪽이요”라는 짧은 말뿐이었다. 조심스럽게 입학처 문을 열고 졸업증명서 발급은 어디로 가면 되냐고 물었다. 입구에 앉아 있던 직원은 안쪽으로 들어가 다른 사람에게 물어본 뒤, 통로를 나가 109호로 가면 된다고 했다.


108호까지만 보였다. 다시 물으니 건물 밖으로 나가보라고 했다. 나가보았지만 문은 잠겨 있었고, 유리문 앞에는 106호만 보였다. 다시 입학처로 돌아갔다. 109호가 보이지 않는다고 하자, 안쪽에 있던 직원이 직접 나와 명찰로 문을 열어주었다. “안으로 들어가면 보여요.” 짧은 설명과 함께였다.


안으로 들어가니 누군가 박스를 정리하다가 문을 나왔다. 그냥 들어가도 되는지, 졸업증명서 발급을 어디서 하는지 물었다. 그 사람이 담당자였다. 이름을 확인하고 필요한 서류를 발급해주었다. 수수료는 천 원이었다. 만 원짜리를 내자 거스름돈이 없어 한참을 기다렸다.


자격증 신청서 제출을 위해 학생처 위치를 물었다. 건물 이름을 물어 다시 안내문을 보여주었지만, 잘 모르겠다는 말이 돌아왔다. 다른 직원은 네이버 지도를 따라가 보라고 했다. 서류를 챙겨 지도를 따라 750미터쯤 걸었다.

이번에는 경비원에게 206호 위치를 물었다. 건물 이름을 묻더니 학생회관이라고 하자 “여기 아니에요. 나가서 오른쪽으로 가면 정문이 있어요”라고 했다. 다시 나와 정문을 찾았고, 그제야 학생회관이 보였다. 2층으로 올라가 직원에게 자격증 신청을 물으니 서류를 달라고 했다. 드디어 맞는 곳에 도착한 듯했다.

직원은 서류를 꼼꼼히 살펴보며 “제가 보기엔 문제없어요”라고 말했다. 다만 담당 주임에게 한 번 더 확인하고 문제가 있으면 연락하겠다고 했다. 수고하시라는 인사를 하고 건물을 나왔다.


지하철역으로 향하며 근처에 사는 후배에게 연락했다. 점심을 같이 먹을 수 있냐고 물었고, 가능하다는 답이 왔다. 컨디션이 좋지 않아 미뤄왔던 만남이었다. 수유역에서 1시에 만나기로 했다.

지하철을 타고 가는 도중, 후배에게서 조금 늦겠다는 문자가 왔다. 이어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서류를 확인했던 담당자였다. 다른 곳에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며 다시 올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근무는 오후 4시 30분까지라고 했다.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이미 돌아가기엔 애매한 상황이었다.


후배와 만나 식사를 하고 카페에 갔다. 이야기가 잘 흘렀다. 고개를 끄덕이며 웃고, 걱정도 나누며 커피를 마셨다. 오랜만에 말이 통하는 사람과 있으니 마음이 편안했다. 그러다 휴대폰 시계를 보니 오후 5시였다. 학교에서 부재중 전화가 세 통 와 있었다.


전화를 걸어 오늘은 어렵고 수요일에 다시 오겠다고 말했다. 후배는 무슨 일이냐며 걱정했다. 친정엄마 저녁을 챙겨야 해서 먼저 일어나야 할 것 같다고 하자, “선배님, 이제 이야기 시작인데요”라며 웃는다. 아쉬움에 서로 웃었다.


후배는 배웅을 하겠다며 집 근처 역까지 함께 가겠다고 했다. 사양했지만, 결국 같이 지하철을 타고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시간은 생각보다 따뜻했다.

학교 일은 깔끔하게 처리되지 않았다. 많은 직원이 있었지만, 명확한 답을 주는 사람은 없었다. 이용하는 사람은 불편했고, 직원이 왜 그 자리에 있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배와 나눈 시간은 소중했다.

오늘은 참을 줄 알아야 하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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