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얻는 지혜 / 발타자르 그라시안 / 현대지성
6부 이 세상은 천국과 지옥의 중간에 있다.
평정심
214. 현명한 사람도 실수할 수 있지만 두 번 다시 그러지 않는다.
하나의 어리석음을 둘로 만들지 말라. 하나의 무례를 변명하기 위해 더 큰 무례를 범할 때도 있다. 이것은 거짓말과 비슷하다. 잘못 자체보다 그것을 두둔하는 것이 더 나쁘다. 그리고 그 잘못보다 최악은 그것을 감출 줄 모르는 데 있다.
현명한 사람도 실수할 수 있다. 그러나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는 않는다. 하나의 어리석음을 둘로 만들지 말라는 말처럼, 잘못을 덮기 위해 더 큰 무례를 저지르지 않는 것이 지혜다. 잘못 자체보다 그것을 변명하고 감추려는 태도가 더 큰 상처를 남긴다.
침묵은 선택이지만, 거짓말은 결국 스스로를 더 깊은 어둠으로 끌고 간다. 잘못을 인정하지 못하면, 삶의 방향은 서서히 검은 그림자 쪽으로 기운다. 내 생각이 엄마에게 도움이 될 거라 믿었다. 나의 말과 선택이 엄마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을 거라 착각했다. 하지만 그 오만함을 깨닫는 데 한 달 반이 걸렸다. 아무리 똑똑한 의사의 말도, 아무리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도, 다이어트 주사 앞에서는 통하지 않았다.
지켜보는 사람이 더 잘 이해한다고 믿는 것 역시 착각이었다. 몸이 힘들다면서도, 요양사님과 화투를 치며 웃는 시간이 하루 중 가장 즐겁다. 운동 프로그램을 보면서도, 발을 조금만 움직여 보라는 말에는 “오죽하면 못하겠냐”며 화를 낸다. 주사를 맞은 뒤 생기는 모든 불편함은 딸이 강요한 약 때문이라 단정한다. 그 말 한마디, 그 시선 하나가 마음을 조금씩 닳게 만든다.
어제, 나는 두 손 두 발을 다 들었다고 말했다. 두 달 치 주사를 처방받아 온 엄마 앞에서, 더 이상 설득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두 달 동안 반복될 감정의 파도와 부정의 말들이 내 에너지를 모두 소진시켰기 때문이다.
“더 이상 주사는 안 맞는 게 좋겠어. 부정적인 생각은 엄마 몸에도 안 좋아.”
그 말 이후, 나는 물러서기로 했다. 아파도 자신의 몸이고, 선택의 책임 또한 스스로의 몫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사람은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간다. 그것이 현명하든, 어리석든, 결국 그 사람의 삶이다.
이제는 가볍고 건강해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희망조차 내려놓기로 한다. 엄마가 생각하는 행복을 인정하기로 한다. 누구의 의견을 따를지 결정하는 것은 내 영역이 아니었다. 미련하게 걱정하며 얼굴을 붉히기보다, 순간이라도 웃을 수 있는 시간을 선택하려 한다.
아무 걱정도 하지 말자. 언젠가 엄마를 떠나보낼 때, 덜 후회하기 위해서라도. 항암을 받으며 버티는 딸의 마음이 전해지지 않는다고 원망하지 말자. 그럴 수 있는 이유가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나의 몫이다. 보이지 않아도, 옆에서 숨 쉬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자. 걱정한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때로는 전문의의 조언조차 삶을 바꾸지 못한다. 인간은 결국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보며 살아간다.
누구보다 현명한 엄마의 선택이, 언젠가는 빛을 발하길 바란다. 그리고 오늘의 나 역시, 조금은 덜 아프게 살아가길 바란다.
부모를 모시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마음가짐’ 정리
1⃣ 설득보다 ‘존중’이 먼저입니다
부모의 삶은 이미 수십 년의 선택으로 완성된 세계입니다. 자식의 논리보다 부모의 세계를 존중하는 태도가 갈등을 줄입니다.
2⃣ 책임은 설득한 사람이 아닌, 선택한 사람에게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선택도 강요가 되는 순간, 짐이 됩니다. 결정의 몫을 다시 돌려주는 것이 서로를 살리는 길입니다.
3⃣ ‘내가 최선을 다했다’는 확신이 중요합니다
결과보다 중요한 건 내가 진심으로 돌보았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훗날 후회를 줄입니다.
4⃣ 돌보는 사람도 돌봄이 필요합니다
부모를 모시는 사람은 쉽게 소진됩니다. 자신을 먼저 돌보는 것은 이기심이 아니라 생존입니다.
5⃣ 사랑은 고쳐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버텨주는 것입니다
때로 사랑은 바꾸는 힘보다 곁에 있어 주는 힘으로 더 깊이 전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