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아끼는 테이블, 차트가 흐르던 오후

by 또 다른세상



광화문 한복판의 카페. 스승님과 제자 셋이 둥근 테이블에 둘러앉아 있다. 화제는 주식이다. 테이블 위에는 노트북 한 대, 화면에는 OO증권회사 HTS가 떠 있다. 삼성전자 차트가 큼직하게 펼쳐져 있고, 빨강과 파랑이 쉼 없이 교차한다. 이동평균선, 피봇, 시초가와 종가, 연봉·월봉·주봉·일봉. 스승님의 걸걸한 목소리가 차트 위를 오르내린다. “차트는 흐름만 알면 어려운 게 아니에요.” 말은 단순한데, 내용은 단순하지 않다.


일상에서 쓰지 않는 단어들, 익숙하지 않은 개념들. 옆에 앉은 두 제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금세 이해한다. 이미 쌓아 둔 지식이 있는 사람들의 속도다. 반면 나는 속으로 같은 말을 계속 반복한다. 이건 또 무슨 말이지? 이해하려 애쓰다 보면 다음 이야기가 넘어가 있다. 스승님은 말을 멈추고 잠시 우리를 둘러본다.

“잠깐만요. 이 이야기는 집중해야 해요.” 오후 세 시쯤. 오수의 시간이지만, 스승님은 열정적인 얼굴이다. 두 언니는 핸드폰을 몇 번이고 확인한다. 매수와 매도를 고민하는 표정이다. 뭔가를 알려주려는 그 와중에도 두 제자는 동시에 핸드폰을 들여다본다. 거래를 놓치고 싶지 않은 눈빛이다. 스승님이 종목 이름을 입에 올리면, 두 사람은 기다렸다는 듯 척척 대답한다. 서로가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들처럼 보인다.


나는 조용히 옆에 앉아 듣기만 한다.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 바로 나다. HTS를 PC에 다운로드하는 데만 이틀이 걸렸다. 지점까지 찾아갔다가 헛걸음을 하고 돌아온 날도 있었다. 결국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어 원격 설치 도움을 받았다. 시작부터 이렇게 버벅대는데, 내가 과연 이 세계에 들어올 수 있을까 싶었다. A는 주식을 언제 사고팔아야 하는지를 ‘육감’으로 느끼는 사람이다. 설명을 들으면 “아, 이쯤이네” 하고 바로 반응한다. B는 시사·경제·제테크 전반에 지식이 풍부하다. 맥락을 이해하고, 질문도 정확하다. 다만 생각이 많아 쉽게 사고, 쉽게 팔지 못한다. 스승님은 그런 B를 볼 때마다 빨리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말끝에 묻어난다. 그 마음을 이해한다.

제자들이 못 알아듣는 그 답답함. 그 사람은 사실 나다. 배우고 싶은 마음은 분명한데, 사전지식이 없다. 질문을 하려 해도 무엇을 모르는지조차 모를 때가 많다. 몇 년 전, 주식 계좌를 만들었다. 주변에서 오른다는 종목 몇 개를 따라 샀고, 그 뒤로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언제 팔아야 하는지,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하는지 몰랐다. 손을 놓고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답답함은 쌓였다.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는 감각은 생각보다 사람을 쉽게 지치게 한다. 이번에는 미루지 않기로 했다.


속도가 나지 않는다는 것도 받아들이기로 했다. 남들보다 느리면 느린 대로, 나의 보폭에 맞춰 천천히 가 보려고 한다. 이해되지 않는 말을 그대로 흘려보내지 않고, 적어도 한 번은 붙잡아 보려고 한다. 이 테이블에 앉아 있는 세 사람은, 나에게는 모두 스승이나 다름없다. 누군가는 직관으로, 누군가는 지식으로, 또 누군가는 경험으로 길을 보여준다. 일정 기간 함께 소통하다 보면, 분명 새로운 경험이 쌓일 것이다.

좋은 인연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나 역시 솔선수범해야 한다. 듣는 태도, 질문하는 방식, 말의 무게까지도 조심해야 한다. 세 명의 스승이 지켜보는 가운데, 조금씩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말도 절제하고, 행동도 신중하게 하면서도 성장의 끈만큼은 놓지 않고 계속 잡아당기고 싶다. 혀는 맹수와 같지만, 배움 앞에서는 침묵이 가장 현명한 말이 될 때도 있다. 오늘도 나는 조용히 듣는다. 알아듣지 못한 채로, 그러나 포기하지 않은 사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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