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얻는 지혜 / 발타자르 그라시안 / 현대지성
6부 이 세상은 천국과 지옥의 중간에 있다.
평정심
226. 아무 조건 없이 베푸는 호의는 없다.
호의를 베풀 때 주의하라.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본모습이 아닌, 호의를 입은 대로 말하고 행동한다. 나쁜 일을 설득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쉽다. 종종 믿기지 않을 때도 나쁜 일은 쉽게 믿어진다. 하지만 우리의 많은 부분 특히 좋은 부분들은 남의 호의에 달려 있다.
명절을 앞두고 있으면 사람들의 얼굴이 하나둘 떠오른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라기보다, 그동안 안부 전화 한 통, 작은 선물 하나로 마음을 주고받았던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기억 속에서 걸어 나온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명절이 다가올 때마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안부를 확인해 왔다. 그것이 정이라는 이름으로 오랫동안 이어져 온 방식이었을 것이다.
요즘은 그 정이 마음 한켠을 무겁게 누른다. 주고받았던 기억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그 주고받음 자체가 부담이 된다. 형편이 어려워지면 마음도 함께 움츠러든다. 작은 선물 하나, 간단한 답례조차 쉽게 결정할 수 없게 된다. ‘정이 없어서’가 아니라, ‘여력이 없어서’라는 말이 더 정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은 자꾸 미안함 쪽으로 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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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는 ‘선물 안 받기’를 공지했다. 처음엔 의무적인 규칙처럼 느껴졌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한편으로는 마음이 편해지기도 했다. 주지 못하는 사람의 마음, 받기만 해야 하는 사람의 마음이 동시에 덜어지는 규칙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명절이 가까워질수록 생기던 마음의 계산표가 잠시 접히는 느낌이었다.
삶은 늘 예외를 만들어 낸다. 오늘, 지인이 가래떡 한 상자를 건네주었다. 금방 한 떡이라 포장을 여는 순간 따뜻한 김이 올라왔다. 손에 쥐니 온기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며칠째 입맛이 없어 끼니를 건너뛰던 참이었는데, 꿀을 찍어 가래떡 한 개를 천천히 씹어 먹었다. 달지도, 과하지도 않은 맛이 입안에 오래 남았다. 몸보다 마음이 먼저 풀어지는 느낌이었다.
늘 그렇듯, 감사함 다음에는 고민이 따라왔다. ‘이 마음을 어떻게 보답해야 할까.’ 선물은 받을 때보다 되돌려줄 때 더 신경이 쓰인다. 받은 것 이상으로 돌려주어야 마음이 편해지는 성격 탓인지, 보답의 크기를 먼저 가늠하게 된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 가늠조차 부담스럽다.
며칠 전에는 친구에게서 한우 꼬리곰탕이 도착했다. 친정아빠가 맛있게 드셨다며, 내 생각이 나서 하나 더 보냈다고 했다. 아무렇지 않게 건넨 말이었지만, 그 말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다른 누군가를 떠올린다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늘 내 하루를 버티는 데 급급해, 누군가의 식탁까지 상상하지 못한다. 친구는 그걸 자연스럽게 해냈다.늘 받고 나서야 생각한다. ‘이제 무엇으로 갚아야 하지?’ 마음을 쓰는 순서가 어긋난 사람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그래서 더 조심스러워지고, 더 침묵하게 된다. 고마움을 표현하는 말조차 너무 가볍게 들릴까 봐, 차라리 말하지 않는 쪽을 택하기도 한다.
오늘은 생각을 조금 바꿔본다. 지금은 감사하게 받자. 지금은 갚을 수 없는 형편이라는 사실을 애써 부정하지 말자. 대신 잘 먹고, 잘 쉬고, 조금이라도 더 건강해지자. 그게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한 답일지도 모른다. 언젠가 형편이 나아지면, 그때 천천히 갚아도 된다고 스스로에게 허락해 본다.
친구와 지인이 건넨 것은 단순한 선물이 아니다. 그 안에는 사랑과 배려, 그리고 말로 다 하지 못한 마음이 담겨 있다. 그것을 잊지 않을 것이다. 꼭 같은 방식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내 삶의 자리에서 다시 흘려보낼 것이다. 받은 온기를 다른 누군가에게 전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그래도 되겠지. 지금은 받는 쪽에 머물러도. 지금은 고마움을 마음속에 잘 간직하고 있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