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얻는 지혜 / 발타자르 그라시안 / 현대지성
6부 이 세상은 천국과 지옥의 중간에 있다.
평정심
227. 첫인상에 휘둘린다는 것은 당신이 피상적이라는 뜻이다.
첫인상에 휘둘리지 말라. 어떤 사람들은 첫 번째로 들은 정보와 결혼한다. 그래서 나머지 정보들은 첩과 같은 신세가 된다. 또한, 늘 거짓이 먼저 오기 때문에 진실이 설 자리가 없다. 따라서 첫 번째 대상을 보고 결심을 굳히거나, 첫 번째 제안을 듣고 판단을 내려서는 안된다.
회사에서 근무하다 보면 가끔 회의보다 먼저 시작되는 시간이 있다. 회의실이 아니라 카페에서, 업무 이야기가 아닌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로 하루를 여는 시간이다. 친한 사람들끼리 조금 일찍 만나 커피를 마시며 웃고 떠드는 그 풍경 속에서, 나는 유독 눈에 띄는 한 장면을 자주 보곤 했다. 대선배 옆에 바짝 붙어 앉아 무언가를 속삭이듯 이야기하는 사람. 지방 점포에서 올라왔다는 그 사람은 선배의 말에 크게 호응하며, 누구보다 친근해 보였다. 두 사람이 친하다는 이야기는 이미 들은 적이 있었다. 오래된 인연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자연스레 그 장면에서 한 발 물러나 있었다. 말을 붙일 수도, 옆에 서 있을 수도 없는 분위기였다.
솔직히 말하면, 그때의 나는 그녀를 좋게 보지 못했다.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대선배에게 잘 보이려고 저렇게 붙어 다니는 건 아닐까.’ 첫인상은 그렇게 쉽게 만들어졌고, 나는 그 인상 위에 별다른 의심 없이 판단을 얹어 두었다. 시간이 흐른 뒤, 그녀는 점의 리더가 되었다.
지방에서 서울로 발령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사람들은 하나같이 말했다. 열정적인 사람이라고. 회사가 원하는 목표를 누구보다 집요하게 달성하려는 사람이라고. 실제로 그녀는 그 말 그대로였다. 매장의 환경 개선부터 외부 매출 유치까지, 손이 닿지 않는 곳이 없었다. 인력도 부족했고, 근무 환경도 열악했지만, 협력업체와 직원, 그리고 고객 서비스에 끊임없이 집중했다. 그 결과는 분명했다. 다른 점포들과 비교해도 눈에 띄는 성과를 냈고, 목표를 훌쩍 넘기는 실적을 만들어 냈다.
그러나 노력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지는 않았다. 문제는 고객 클레임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문제라기보다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고객과 직원이 맞닥뜨린 상황이었다. 누구의 잘못이라고 단정하기 어려운 일이었지만, 관리자는 결국 책임을 져야 하는 위치였다. 그녀가 그 자리에 있었다. 사과를 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고객은 분노를 멈추지 않았다. 고객센터와 본사는 해결을 요구하며 압박을 가했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그녀의 몫이 되었다.
가까운 곳에서 근무하고 있었기에, 나는 몇 번 그녀를 찾아가 식사를 함께하며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는 자신이 잘못한 일이 아님에도 ‘관리자’라는 이유로 모든 책임을 떠안아야 하는 현실이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말을 이어가는 동안 손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고, 그 떨림은 단순한 분노가 아니라 지쳐버린 마음에서 비롯된 것처럼 보였다. 누구도 자신의 마음을 헤아려 주지 않는 것 같다고, 회사는 도와주는 존재라기보다 책임을 묻는 쪽에 더 가깝다고 했다. 고객은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이 아니었고, 그저 분노를 쏟아낼 대상을 찾고 있을 뿐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는 동안, 처음 카페에서 보았던 장면이 떠올랐다. 대선배 옆에 붙어 있던 모습. 그 모습 뒤에 이런 시간을 견디고 있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는, 그때의 나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시간은 또 흘렀고, 조직 개편 속에서 그녀는 팀원이 되었다. 잠시 같은 영업점에서 근무하며, 그녀는 종종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여전히 열정적으로 일했고,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이 사람은 인정받기 위해 애쓰는 사람이 아니라, 책임을 다하려 애쓰는 사람이구나.
그러다 나는 병가 휴직에 들어갔고, 한동안 그녀를 만나지 못했다. 항암 치료가 있는 날이었다. 병원에서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고 나니 몸은 말할 것도 없이 지쳐 있었다. 그날 저녁, 그녀에게서 문자가 왔다. 병원이라는 말을 하자, 컨디션이 괜찮으면 꼭 자기 집에 들러 달라고 했다. 장어를 구워 주려고 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마음은 고마웠지만, 그날은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었다. 힘들어서 다음에 가겠다고 하자, 그녀는 먼저 몸부터 챙기라는 말을 건넸다.
그 문자를 읽으며, 나는 오래전의 나를 떠올렸다. 대선배에게 잘 보이려 애쓰는 사람이라고 쉽게 단정했던 나. 하지만 지금의 그녀는, 힘든 사람에게 먼저 손을 내미는 사람이었다. 열정뿐 아니라 따뜻함을 가진 사람이었다. 오히려 내가 배워야 할 사람이었다.
얼마의 시간이 우리에게 주어질지는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건, 첫인상만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겉으로 보이는 친근함이나 행동 뒤에는 각자의 사정과 버텨온 시간이 숨어 있다. 나는 이제, 그녀가 힘들 때 곁에서 용기를 건넬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 마음이, 내가 이 이야기를 쓰게 된 이유다. 첫인상에 휘둘리지 말 것. 사람은, 가까이에서 오래 바라볼수록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주기도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