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탁이라는 용기

by 또 다른세상

사람을 얻는 지혜 / 발타자르 그라시안 / 현대지성

7부 인생의 진정한 공부를 마지막으로 미루지 말라


온전함


235. 부탁할 때는 기분이 좋거나 몸과 마음이 배부를 때를 노리라


부탁하는 법을 배우라. 어떤 사람에게는 부탁만큼 어려운 일이 없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그렇게 쉬운 일도 없다. 부탁을 받으면 거절할 줄 모르는 사람이 있다. 부탁을 받으면 거절 할 줄 모르는 사람이 있다. 이들에게 부탁할 때는 따로 계락이 필요없다. 늘 ‘아니오’인 사람에겐 기술이 필요하다.


부탁하는 법을 배우라는 말을 들으면, 왠지 비굴해지는 기술을 익히라는 말처럼 들릴 때가 있다. 그러나 살아보니 부탁은 굴복이 아니라 관계의 온도를 재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된다. 어떤 사람에게는 부탁이 숨 쉬는 것만큼 자연스럽다. 힘들면 말하고, 필요하면 청한다. 반대로 어떤 사람에게는 그 한마디가 목에 걸린 가시처럼 어렵다. 나 역시 그렇다. 웬만하면 혼자 해내고 싶고, 가능하면 티를 내지 않고 싶다.

세상에는 부탁을 받으면 거절을 못 하는 사람이 있다. 그들에게는 특별한 기술이 필요 없다. “괜찮으세요?” 한마디면 충분하다. 그러나 늘 “아니오”가 먼저 나오는 사람에게는 타이밍과 말투, 표정까지 계산해야 한다. 부탁은 감정의 여백이 있을 때 들어간다. 배가 고프고, 마음이 날이 서 있을 때는 아무리 사소한 요청도 공격처럼 들린다. 그래서 나는 다짐한다. 부탁할 일이 생기면, 상대의 기분이 좋을 때, 몸과 마음이 배부를 때를 기다린다.


부탁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가끔은 누군가 집안일을 대신해 주면 좋겠다는 마음이 생긴다. 청소를 하는 일, 음식을 하는 일, 분리수거를 하는 일, 빨래를 하는 일. 그리 거창하지도 않다. 도우미를 부르기엔 많지 않은 일들이다. 그러나 내가 하기엔 힘이 달릴 때가 있다. 항암 치료로 체력이 떨어진 날이면,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먼지를 닦는 일조차 숨이 가쁘다.


아들이 함께 살고 있지만, 눈에 보이는 일을 일일이 말로 꺼내는 것도 에너지가 필요하다. “이거 좀 해 줄래?”라는 말이 왜 이렇게 어려운지. 부탁하는 순간, 나는 약자가 되는 기분이 든다. 엄마라는 자리에서 한 발 물러나는 느낌. 집에 오는 식구들도, 아들도 결국은 제3자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어질러진 방을 보고 답답해하는 사람은 나뿐이다. 버릴 물건이 산처럼 쌓여도, 쓰레기장 같다고 말하는 사람도 나뿐이다.

날씨가 좋은 어느 날이면 갑자기 집단장을 하고 싶어진다. 창문을 활짝 열고, 묵은 물건을 과감히 버리고, 새 출발을 하고 싶다. 마음은 앞서는데 몸이 따라오지 않는다. 시작했다가 마무리가 어려워 원래대로 돌려놓는 날이 더 많다. 상자만 열어두고 지친 채로 소파에 누워 천장을 바라본다. 그때마다 자책이 스며든다. 예전의 나는 이 정도 일은 거뜬히 해냈는데, 왜 이렇게 되었을까.


어느 날 아들에게 설거지를 해도 된다고 말한 적이 있다. 힘들어서라기보다, 그냥 같이 나누고 싶어서였다. 그때 아들은 웃으며 말했다. “엄마 운동하시라고 남겨둔 거예요.” 순간 얄미운 마음이 스쳤다. 나를 생각해서 한 말인지, 귀찮아서 한 말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항암 치료 중인데 살이 찌면 어떻게 해석해야 하느냐고 묻기도 하고, 머리를 보고 절에서 오셨느냐고 농담을 던지기도 한다. 장난기 섞인 말투로 웃으라 하지만, 그 말이 가끔은 가슴을 긁는다.

그럴 때면 ‘언제 철이 들려나’ 하는 생각이 먼저 올라온다. 그러나 곧 스스로를 돌아본다. 나 역시 스무 살 무렵에는 친구들과 어울리는 일이 세상의 전부였고, 돈을 번다고 어깨가 으쓱해 가족에게는 무심했다. 부모의 마음을 헤아릴 여유가 없었다. 지금에서야 조금 철이 들었으니, 아들에게 너무 큰 기대를 하는 건 아닐까 싶다. 그는 아직 자신의 세계를 넓히는 중이다.


부탁이 어려운 이유는 기대가 섞여 있기 때문이다. “이 정도는 알아서 해 주겠지.” “이만큼은 나를 이해해 주겠지.” 기대가 크면 실망도 깊다. 그래서 이제는 기대를 줄이기로 한다. 대신 감사의 눈을 키우기로 한다. 아들이 건강하게 자신의 삶에 집중하고 있는 것, 나 또한 치료를 받으며 하루를 견디고 있는 것, 그 사실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마음을 다잡는다.


가족에게조차 부탁하는 것이 어렵다. 그러니 타인에게는 더 말할 것도 없다. 병원에서 간호사에게 작은 요청을 할 때도, 동료에게 도움을 구할 때도 한 번 더 망설인다. 혹시 폐를 끼치는 건 아닐까, 나를 부담스러워하지 않을까. 그러나 생각해 보면, 나 역시 누군가의 부탁을 들어주며 기뻤던 적이 많다. 필요로 된다는 감정은 생각보다 따뜻하다. 어쩌면 상대도 같은 마음일지 모른다.


그래서 부탁은 기술이 아니라 용기인지도 모른다. 상대의 상황을 살피되, 나의 필요를 숨기지 않는 용기. 모든 것을 혼자 짊어지지 않겠다는 선언. 도움을 청한다고 해서 나의 가치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관계가 한 걸음 가까워질 수 있다.

앞으로 부탁할 날이 또 올 것이다. 그때는 숨을 고르고, 상대의 얼굴을 살피고, 말의 온도를 낮춰 조심스레 꺼내 보리라. “괜찮다면, 조금만 도와줄 수 있을까?” 하고. 그리고 그 부탁이 받아들여지면 진심으로 고맙다고 말하리라. 거절당해도 상처받기보다,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물러나리라.

몸과 마음이 배부른 날을 기다리는 이유는, 나 또한 그날의 사람이 되고 싶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부탁을 너그럽게 받아줄 수 있는 사람. 피곤과 예민함 대신 여유를 건네는 사람. 지금은 치료 중이라 체력도, 감정도 들쑥날쑥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배우는 중이다. 부탁하는 법과, 부탁을 받아들이는 법을.


오늘도 집안일이 산처럼 보일지라도,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기로 한다. 그리고 정말 힘든 날에는 조용히 말해 보려 한다. “오늘은 조금 도와줄래?”라고. 그 한마디가 내 자존심을 깎아내리는 말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연습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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