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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무지는 빠졌지만, 엄마의 웃음이 있었다

by 또 다른세상

소풍 가던 날, 엄마의 김밥은 언제나 최고 인기였다. 특별한 재료가 들어간 것도 아니었지만, 담백한 맛에 친구들이 하나둘 몰려들었다. 아마도 재료 하나하나에 정성을 담아 만드는 과정 덕분이었을 것이다.


엄마는 지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몸이 되었다고 말하지만, 나는 안다. “그땐 할 수 있는 게 있었고, 지금은 또 다른 방식으로 할 수 있는 게 있는 거지”라고, 엄마는 덧붙였다.


어제 저녁, 예능 프로그램에서 네 가족이 김밥을 만들어 먹는 장면을 봤다. 신김치, 어묵, 고기, 우엉… 기본 재료만으로도 그 과정이 어찌나 맛있어 보이던지. 그런데 그날 따라 엄마도 나도 속이 좋지 않아, 아침엔 소화제를 먹고 죽을 쑤어 먹었다. 음식을 마음껏 먹지 못하니 오히려 입맛이 더 당겼다.


“김밥 만들어 먹자” 하니, 엄마는 “맛있겠다”며 웃으셨다. 마트에 가려는데 둘째 언니와 형부가 찾아왔다. 어버이날을 앞두고 미리 인사하러 온 것이다. 김밥 같이 만들어 먹고 가라고 하니, “아픈 사람이 뭘 그런 걸 하냐”며 사다 먹으라신다. 그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마트로 향했다.


우엉, 김, 맛살, 햄, 단무지, 어묵… 처음 김밥을 싸보는 거라 이것저것 사다 보니 23,000원이 들었다. 김밥김이 열 장. 그러니까 열 줄은 만들 수 있겠구나.


집에 와서 재료를 살짝 볶았다. 냉장고에 있던 오이도 꺼내 반을 잘랐다. 모양을 예쁘게 손질하진 못했지만, 괜찮았다. 계란 네 개를 풀어 약하게 소금 간을 하고 지단을 부치려 했는데, 뒤집으려니 다 찢어질 것만 같았다. 그래도 푸짐한 느낌은 났다.


식탁에 도마를 올려놓고 쟁반에 재료를 나란히 두었다. 엄마를 불러 함께 하자고 했다. 보행기를 밀며 천천히 오시는 모습에 마음이 묘했다. “아픈 사람 뭘 불러” 하시면서도, 얼굴엔 생기가 돌았다. 함께 요리하는 시간이 이렇게 좋을 줄이야. 엄마는 젊은 시절 생각이 난다며 살짝 웃으셨다.


밥은 어떻게 하냐고 물어 보니, 밥도 살짝 볶아야 한다고 했다.

엄마의 말대로 해봤다. 밥에 소금, 참기름, 약간의 식초도 섞어 후라이팬에 데우니 더 맛있어졌다.


일회용 장갑을 끼고 김 위에 밥을 꾹꾹 펴며 얹었다. 그 위에 재료를 듬뿍. 이상하게 같은 재료인데, 엄마가 싸면 얇고 단단한 김밥이 나오고, 내가 싸면 부풀고 터져버렸다. 그래도 끝까지 열 줄을 완성했다.


세 줄을 먼저 썰었다. 꼬다리부터 하나 집어 먹었는데, 맛있었다. 조금 싱겁긴 했지만, 국물과 함께 먹으니 딱 좋았다. 예쁘게 썬 조각을 엄마 입에 넣어드리니, “시장 본 게 얼마야?” 하신다. 김밥집에서 사 먹는 것과 비교해 보신 듯하다. “열 줄이면 만 원 정도 절약이에요.” 했더니, “맛있다”며 잘 드셨다. 혹시 모르니 꼭꼭 씹어 드시라고 몇 번이나 당부했다.


김밥 만드는 모습을 가족 단톡방에 올렸다. 엄마가 산소호흡기만 안 하셨다면 사진이 더 밝았을 텐데. 그래도 함께 하는 건 좋은 일이다. 엄마는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아마 젊은 시절을 떠올리셨겠지. 그렇게 시간이 조금 흐른 후 엄마가 조용히 말씀하신다.


“이걸 어째, 단무지를 안 넣고 말았네.”



그 순간 엄마와 눈이 마주쳤고, 우리는 동시에 웃었다.

“엄마, 단무지 따로 먹으면 되죠 뭐.”


그 사이 지인이 전화를 걸어왔다. 김밥 두 줄을 맛있게 먹고 가셨다. 둘째 언니도 다시 와서 한 줄은 드시고, 두 줄은 형부 드린다며 싸갔다. 남은 김밥은 저녁에 썰어 깔끔하게 다 먹었다.


엄마와 나는 웃으며 말했다. “김밥 장사 참 잘했네.”


서툴지만 정성껏 만든 김밥은 정말 맛있었다. 자주 함께 할 수 있는 요리를 고민해봐야겠다. 빨리 만들지는 못해도, 엄마의 손맛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세상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사랑의 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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