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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딸의 행복한 맛

by 또 다른세상

손이 잘 움직이지 않는 딸이 조심스레 말한다.
“카레가 먹고 싶어.”

점점 미각을 잃어가는 딸의 모습이 안타까운 엄마는 말한다.
“재료 가져와.”

딸은 고무장갑을 끼고 감자 세 개를 겨우 깎고, 당근 반쪽도 억지로 깎아낸다. 호박은 깨끗이 씻어두고, 양파도 껍질을 벗겨 식탁으로 옮긴다. 도마와 칼, 그리고 큰 냄비도 식탁 위로 조심조심 옮겨 놓는다.

냉장고에 있던 카레가루는 미리 그릇에 덜어 찬물에 풀어 놓는다.
호박을 썰던 엄마가 조용히 말한다.
“기운이 없네.”

딸이 중간에 포기하겠다고 하면, 카레는 못 먹는다.
엄마는 끝까지 묵묵히 재료를 썬다.
감자, 당근, 호박, 양파… 그 모양이 하나같이 정갈하다.


딸이 가까이 가서 보니, 감자와 당근은 따로, 당근과 호박도 따로 담아 놓았다.
“같이 볶으면 호박이랑 양파는 너무 익으면 안 돼.”
엄마는 그렇게 말하며 주의도 준다.

올리브유를 두른 냄비에 감자와 당근을 먼저 볶는다.
재료는 크기도 모양도 가지런히 예쁘다.
“요리는 자신 없는데…”
딸은 작게 중얼거리며 재료를 다 준비해 준 엄마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버섯, 두부, 토마토도 미리 준비해 두었다.
냄비에 물을 조금 붓고 모든 재료를 넣는다.
팔팔 끓기 시작하자 카레가루를 넣고 불을 줄인다.
천천히 저어가며 끓인다.

흰밥도 다 지어졌다.
이제 먹기만 하면 된다.

국물을 한 숟갈 떠먹어 본다.
“엄마, 맛이… 너무 없어.”
소금을 조금 넣어 본다. 그래도 싱겁다.

“밥 너무 많아. 빈그릇 줘.”
엄마가 말한다.
“그 정도는 드셔야죠.”
딸은 웃으며 빈그릇을 주지 않았다.

“맛이 있는 건지 잘 모르겠어.”
딸이 말하자, 엄마가 한 숟가락 떠먹는다.
“간이 간간하네. 맛있네.”

다행이다.
엄마와 딸의 합동작품 카레라이스는 그렇게 완성됐다.

정확한 맛은 느낄 수 없었지만,
엄마의 정성이 담긴 그 한 그릇은
어떤 음식보다 따뜻하고, 깊은 맛이었다.

크게 한 그릇, 뚝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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