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책은 다 어디에 치웠니?”
엄마의 물음에 순간 멈칫했다. 오래 앉아 계시면 다리가 붓기에 책들을 눈에 띄지 않도록 보관해 두었는데, 그동안 책 읽기를 잊으신 줄 알았다. 그런데 다시 책을 찾으시는 엄마의 모습이 참으로 경이롭고 존경스러웠다.
책을 읽고, 또 써내려 가신다. 여든여섯. 독학으로 한글을 익힌 분이다. 가끔 지인들이 엄마의 책 읽는 모습을 보고 가장 존경스럽다고 말한다. 어제는 고향 언니가 놀러 왔다. 부모님을 모두 떠나보낸 언니는, “엄마 생각이 나서 왔어,”라며 오랜만에 우리 집 문을 열었다.
침대가 놓인 방과 엄마의 얼굴을 보더니 호텔이 따로 없다며 감탄했다. 엄마의 손을 꼭 잡은 채 “오래 사셔야 해요”라고 몇 번이고 말했다. “이제는 전화할 곳도 없고, 갈 곳도 없어요.” 울먹이며, “계실 때 잘 해드려야 했는데, 시간 참 빠르다,”고 하던 언니의 말이 오래도록 가슴에 맴돌았다.
식탁 의자에 놓인 방석을 본 언니는 또 한 번 놀랐다. 집 안 곳곳에 놓인 방석, 욕실 매트, 주방 매트, 심지어 수세미까지 모두 엄마의 손끝에서 탄생한 작품들이다. 정성스레 색깔을 맞춘 솜씨에, 손재주가 대단하다며 연신 감탄했다.
늦은 나이에 한글까지 배우셨다고 자랑하자, 언니는 눈이 동그래졌다. 제대로 걷지도 못하시지만, 손으로는 쉴 새 없이 무언가를 만들고 글씨를 쓰시는 엄마. 치매 예방에도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새벽잠이 없으신 엄마는 해가 뜨기 전부터 바느질을 하고, 연필을 쥐고 앉아 한 글자씩 적어나가신다. 그 모습은 딸로서 자랑스럽고, 또 존경스럽다.
그뿐만이 아니다. 가족들에게 한 장 한 장 편지를 써주셨다. 아들, 딸, 사위, 며느리에게 정성껏 써 내려간 글을 받고는 모두가 감동했다. “정말 엄마가 쓰신 거 맞아?” 몇 번이고 묻고는, 평생 간직하겠다며 편지를 소중히 품에 안았다. 이후에도 큰형님과 큰집 조카들에게 예쁜 선물과 함께 편지를 써주셨고, “작은엄마가 최고야!”라는 칭찬이 돌아왔다. 그 말에 엄마는 몹시 흐뭇해하셨다.
언니에게 선물하고 싶었다. 엄마가 만든 방석과 수세미를 꺼내 보여주자, “어쩌면 색깔을 이렇게 곱게 맞출 수가 있냐”며 감탄이 끊이지 않았다.
1940년대, 엄마 또래의 여성 중에 제대로 학교 교육을 받은 분은 드물다. 엄마는 한글을 몰랐던 것이 한이 된다고 하셨다. 이해하려고는 했지만, 바쁘다는 이유로 충분히 도와드리지 못한 날들이 많았다. 몇 번을 쓰고 지우고, 또 반복하시는 엄마. 식탁 위, 연필 자국과 지우개똥이 가득한 자리에서 눈물이 났다. 제대로 쥐어지지 않는 연필을 쥐고도 익숙하지 않은 손놀림으로 끝끝내 써내려 가시는 그 모습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심하게 아팠던 고비를 넘기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지금. 엄마에게 이 시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순간이다. 내가 다 이해하지 못하는 한글, 그 조각들을 입으로, 손으로, 눈으로, 귀로 익혀나가신다. 알아가는 것보다 잊히는 게 많다며 한숨지으시지만, “책을 놓지 않는 한, 희망은 있어,”라는 엄마의 말에 나는 또 배운다.
걷지 못하면서도 여든여섯에 연필을 쥐고 한글을 배우기 시작한 엄마. 본인도 상상하지 못했을 삶의 장면일 것이다. 지금의 엄마는 아름답게 늙어가는 것이 무엇인지,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온몸으로 보여주는 분이다.
나도 그 나이가 되면 이 글을 꼭 읽어야겠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묻고 싶다. “너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니?”
순간을 소중히 보내고 있는지, 엄마의 소리 없는 가르침을 잊지 않고 있는지.
힘들 때마다 떠오르는 엄마의 모습 덕분에, 나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 함께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엄마라는 존재 자체가, 내 인생의 가장 큰 가르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