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든 사이, 조용히 떠나는 꿈

by 또 다른세상

사람을 얻는 지혜 / 발타자르 그라시안 / 현대지성

7부 인생의 진정한 공부를 마지막으로 미루지 말라


온전함


241. 조롱받을 일이 생기지 않게 하라


조롱을 받아주되, 조롱하지는 말라. 조롱을 받아주는 건 일종의 정중함이지만, 남을 조롱하면 문제가 생긴다. 농담할 때 화를 많이 내는 사람은 거친 면이 있는데, 조롱을 받으면 그런 면이 더 드러난다. 좋은 조롱은 유쾌하고, 그것을 받아주는 건 머리가 좋다는 뜻이다.


시집와 의지하며 지냈던 동네 언니와 통화가 된 친정엄마의 목소리는 한결 밝았다. 스피커폰으로 통화를 해서 둘째 언니와 나도 내용을 다 들었다. 그럼에도 엄마는 식탁으로 걸어와 다시 설명을 시작했다.


“너희도 알지? 큰언니랑 그 집 막내가 나이가 같잖아. 글쎄 그 언니가 나보다 아홉 살이나 많대. 지금 아흔여섯이래. 그 언니가 왜 안 죽느냐고 묻더라. 그래서 내가 그랬지. 언니, 그런 말 하지 말고 죽기 전 하루만 아프다가 잠들게 해 달라고 기도하라고. 내가 기도해 줄게, 그랬어.”

둘째 언니와 나는 “우리도 다 들었어.” 하고 웃었다.


엄마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그 집 막내딸은 가게를 하는데 암이라 치료를 받으면서도 염소탕을 판다고 했다. 첫째 아들은 아직도 술을 많이 마신단다. 이혼 후 마음을 못 잡은 모양이라고 했다. 그 언니는 첫째 아들이 기초생활수급자가 되면 자신을 모시겠다고 말한다며, 엄마는 가지 말라고 했다고 했다. 밥을 해줘야 할 것 같아서 싫다고 했단다. 첫째 아들의 아들은 아이가 셋인데 또 이혼을 했다고 했다. 타일 붙이는 기술이 있어 양육비는 주고 있지만, 전처에게 다른 남자가 생겼다는 말도 덧붙였다.


엄마의 새댁 시절 함께 지냈던 그 언니의 가정사는 소설 같았다.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했다.


그 집 이야기를 털어놓듯, 엄마는 우리 집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꺼냈다. 막내는 좋지 않은 병으로 치료를 받고 있고, 엄마는 다리가 아파 잘 걷지 못한다. 화장실만 겨우 다닌다며 자신도 빨리 죽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가 왜 안 죽니?” 하고 묻자, 엄마는 말했다.

“그래도 언니, 살아 있는 게 행복이래.”


엄마의 언니는 최근까지 노인회장을 맡아 잘 지냈다고 한다. 말에도 힘이 있고 조리 있게 잘한다고 했다. 막내아들과 함께 지내며 요양사의 도움을 받는다. 가끔 손녀가 오면 화장실 가는 것도 도와준다. 그래서 여전히 똑똑하다는 말을 덧붙인다.


지인의 시어머니가 백 세를 살고 얼마 전 돌아가셨다는 소식도 들었다. 최근까지 섬망 증상이 있어 병원에 입원했다가 한 달 만에 부고가 전해졌다. 그 집안은 장수 집안이다. 시어머니의 어머니도 백다섯에 세상을 떠났다. 두 분 다 가만히 있지 않는 성품이었다고 한다. 일어나 청소를 하고, 성경을 읽으며 하루를 보냈다. 식사도 잘하고 말씀도 또렷했다고 했다.


죽음은 언제고 찾아오지만 예고편은 없다. 새벽, 산소호흡기를 하고 잠든 엄마의 숨소리가 들린다. 조용히 주무시다가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나면 “아버지, 아버지, 아이고…” 하고 신음하신다. 그 소리를 들으면 심장이 무너진다.


어떻게 더 도와드릴 수 있을까. 아프지 않게 할 방법은 없다. 어떤 약을 먹어도 다른 곳이 다시 아프다. 건강 음료와 과일을 조금씩 드린다. 드실 때는 참 맛있게 드신다. 낮에는 통화 속에서 지혜로운 동생으로 살다가도, 집에서는 아픈 아이가 되고 싶은 모양이다.


유한한 우리의 삶. 엄마 말처럼 살아 있는 동안 행복해지자. 엄마도, 나도, 가족도 마찬가지다. 욕심을 줄이면 삶의 고민도 줄어든다는 말이 이해된다. 결국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은 욕심인지도 모른다. 살아 있음의 시간을 잘 활용하는 것, 그것이 내 몫 아닐까.


노인이 되었을 때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지금처럼 글을 쓰고 있으면 좋겠다. 일상을 쓰고, 사람을 쓰고, 생각을 쓰며.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무언가를 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누군가 “글이 그게 뭐냐”고 조롱 섞인 말을 해도 웃어 넘길 수 있는 여유 있는 노인이 되고 싶다.

그러다 잠든 사이, 조용히 예수님 곁으로 가고 싶다.

이 바람이 너무 큰 욕심일까.



매거진의 이전글세대 사이에서 배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