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함의 유혹

by 또 다른세상

사람을 얻는 지혜 / 발타자르 그라시안 / 현대지성

7부 인생의 진정한 공부를 마지막으로 미루지 말라


온전함


242. 한번 시작했으면 끝장을 봐라


끝까지 쫓아가라. 어떤 사람들은 시작할 때 온 힘을 다 쏟지만, 끝을 보지는 못한다. 끝을 보지 못한다. 만일 그 일이 나쁘다면 왜 시작했는가?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사냥감을 몰기 시작한 것에 만족하지 말고, 끝까지 쫓아가서 죽여야 한다.


무언가를 시작하는 일은 어렵다. 그러나 끝까지 가는 일은 더 어렵다. 많은 사람이 출발선에서는 결연하다. 하지만 고통이 길어지고 결과가 더디면 속도가 느려진다. 결국 멈춘다. 문제는 능력이 아니라 지속하는 힘이다.

누워 지내던 친정엄마는 한때 침대에서 손으로 식사를 했다. 간병인이 곁에 있었지만 도움을 최소화하려 했다. 타인에게 부담이 되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다. 배려였지만, 동시에 스스로를 더 약한 자리로 밀어 넣는 선택이기도 했다. 도움을 받는 순간, 움직임은 줄고 기능은 더 빠르게 퇴화한다.


허리 수술을 결정하던 날은 달랐다. 수술하면 걸을 수 있다는 의사의 말 앞에서 생사를 각오했다. 두 차례, 각 6~7시간의 긴 수술을 견뎠다. 회복 과정은 더 힘들었다. 통증과 싸우며 재활치료에 집중했다. 보조 기구를 붙잡고 일어서던 순간, 모두가 기적을 보았다. 2년의 재활 끝에 지팡이를 짚고 걸었다. 걷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삶의 표정이 달라졌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또 다른 시험이 찾아왔다. 노화와 합병증, 늘어나는 약, 반복되는 병원 방문. 몸은 다시 편한 쪽을 선택하기 시작했다. “큰 수술을 했으니 못 걷는 게 당연하다”는 말이 습관이 되었다. 사실은 반대였다. 수술은 걷기 위해 감당한 선택이었다.


여기서 배울 점이 있다.

첫째, 결단의 순간을 기억해야 한다. 가장 힘들 때 내렸던 선택은 대개 가장 간절했던 소망에서 출발한다. 그 초심을 잊으면 과정은 무너진다.

둘째, 편안함은 늘 옳지 않다. 몸은 쉬운 길을 택하지만, 회복은 불편한 반복 속에서 만들어진다. 오늘 한 번 덜 움직이면 내일은 두 배가 힘들어진다.

셋째, 도움은 방향이 중요하다. 대신 해주는 도움은 기능을 약하게 만들 수 있다. 스스로 하도록 기다려 주는 도움이 더 큰 사랑일 때가 많다.


병을 겪는 사람뿐 아니라 건강한 사람도 마찬가지다. 운동, 공부, 글쓰기, 관계 회복 모두 비슷하다. 시작은 의욕으로 가능하다. 완주는 습관과 태도가 만든다. ‘오늘은 힘들다’는 이유로 멈추는 선택이 반복되면, 어느 순간 “원래 못 하는 사람”이라는 자기 암시가 굳어진다.


끝장을 본다는 말은 무모하게 버티라는 뜻이 아니다. 방향을 잃지 말라는 뜻이다. 속도가 느려도 좋다. 지팡이를 짚어도 좋다. 다만 스스로 가능성을 부정하는 말은 줄여야 한다. 말은 생각을 만들고, 생각은 행동을 만든다.


큰 수술을 견딘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동정이 아니라 기억이다. 왜 그 선택을 했는지, 무엇을 바라보았는지, 얼마나 견뎌냈는지 스스로 상기하는 일이다. 그 기억이 다시 몸을 움직이게 한다. 삶은 긴 재활과 닮았다. 한 번의 결단으로 끝나지 않는다. 매일 다시 선택해야 한다. 그것이 결국, 삶의 방향을 바꾸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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